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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아침을 열며]신장개업

opinionX 2018. 3. 5. 10:58

여의도 정치판을 보면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먹자골목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선요리가 있다면서 손님끌기 경쟁을 벌이는 식당이나, 특색 있는 공약을 앞세워 유권자를 끌어모으려는 정당의 행태는 외견상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당 사업의 성패가 단골 확보에 달려 있듯 얼마나 튼튼한 지지층을 갖췄느냐에 따라 정당 명운이 엇갈린다.

사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과 식당을 비유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고유의 맛을 지닌 식당이 손님을 끌듯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정당이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식당=정당’ 프레임을 다시 꺼내게 된 것은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등 신생정당들의 등장이 신장개업과 비슷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신장개업 시각을 적용하면 신생정당들의 행태와 앞날을 분석하는 데, 꽤 유용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 주방장이 공동창업한 ‘바른미래식당’을 보자. 안철수 대표 주방장은 벌써 두 번째 창업이다. 컴퓨터업계에서 요식업계로 이직한 안 주방장은 몸담았던 더불어민주식당의 영업수지가 악화되자, 국민식당을 창업했다. 하지만 진보성향 호남 고객의 호응으로 초반 반짝했던 장사가 갈수록 내리막길을 걷자 그는 국민식당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바른미래식당을 창업했다.

그런데, 안철수 주방장의 이번 창업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나마 더불어민주식당과 국민식당은 젊은층과 진보성향 고객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메뉴가 엇비슷했다. 그러나 중도보수층을 겨냥한 바른미래식당은 이전에 몸담았던 식당들과 추구하는 맛이 다르고 메뉴도 다르다. 젊은층을 겨냥한 분식을 만들던 주방장이 갑자기 중장년층을 겨냥한 설렁탕과 곰탕을 끓인다니, 그 맛은 어떻겠는가. 아무리 유명한 주방장이라도 메뉴를 바꾸려면 수련이 필요한데, 안철수 주방장은 그마저도 생략했다. 

공동창업주인 유승민 주방장의 손맛도 의심스럽다. 바른식당 때부터 그의 음식은 일부 마니아층의 호응을 얻었을 뿐 대중적이진 않았다. 외골수로 알려진 그가 안철수 주방장의 동업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것은 당면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경영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종업원들과 단골들이 하나둘 떠났고, 그대로라면 바른식당의 파산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다보니 안철수 주방장과 자신의 맛 궁합이 어떨지 따져볼 겨를은 미처 없었다. 과연 안 주방장이 맛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유 주방장은 알쏭달쏭할 것이다.

민주평화식당은 또 어떤가. 국민식당과 바른식당의 합병에 반대해 독자 창업한 이 식당은 진보가치·대북평화정책이라는 맛을 앞세운다. 하지만 고객을 잡아끌 만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대표 주방장이 없다. 대표 주방장 경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이 내는 맛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맛의 철학을 바꾸고 단골을 배신했다’며 안철수 주방장의 변심을 비난하지만, 이들도 떳떳하지 않다. 월급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더불어민주식당을 떠나 국민식당으로 옮겼고, 친정 음식이 맛없다며 비난에도 앞장섰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개업한 자유한국식당은 신장개업의 실패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이들은 매출 악화로 경영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나라식당→새누리식당→자유한국식당 등 이름을 바꿔달면서 꾸역꾸역 버텼다. 하지만 간판만 바뀌었을 뿐 늘 메뉴는 같았다. 신메뉴 개발이나 맛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노력은 없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주방장이 끓였던 설렁탕에서 ‘국정농단’이라는 커다란 구더기가 나왔지만, 여태껏 이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홍준표 주방장이 들어선 후 음식은 더 맵고 짜졌다. 그가 주방에서 하는 막말들이 홀 바깥까지 들리면서 얼마 남지 않은 노년층 단골마저 떨어져 나갈 지경이다. 바른식당에서 이적한 김성태 보조 주방장은 ‘UAE’ 조미료를 넣었다가 설렁탕을 망친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가 가끔 주방에서 혼수상태가 되거나, 뚜렷한 이유 없이 주변에 호통을 친다는 소문이 돈다.

그럼에도 이들은 6월 지방선거에서 대박을 자신한다. 바른미래식당은 보수층 고객을 끌어와 자유한국식당을 문 닫게 하겠단다. 민주평화식당은 안철수 주방장 배신을 심판하겠다고 한다. 자유한국식당 홍준표 주방장은 먹자골목을 장악한 더불어민주식당 음식에 질린 고객들이 자신의 음식을 찾게 돼 있다고 장담한다. 그런데 이들이 내놓은 음식을 사 먹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계란 푼 라면을 집에서 끓여 먹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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