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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추운 이번 겨울 국민들의 몸과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한반도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역할도 하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올림픽 개막 직전 극적으로 북한의 참여가 성사돼 남북 단일팀도 구성됐고, 북한의 실세가 특사로 내려오기도 했다.

14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 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과 일본과의 경기에서 북한 응원단이 응원을 하고있다. 이준헌 기자

30년 전 서울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릴 때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통일운동이 있었다. 당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주의의 숨통이 트였던 직후다. 남북학생회담을 추진하던 학생들은 뜨거운 여름 판문점으로 가는 길목인 홍제동 대로의 아스팔트 위에 드러누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고, 지랄탄(다연발 최루탄) 가스를 한 양동이씩 마셨다. 1960년 4·19혁명 직후에도 학생들이 나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를 외치며 통일운동을 벌였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정치적 격변기 후엔 통일 바람이 불었다. 한국 사회 모순의 근원이 분단과 남북 대결에 있다 보니 사회변혁기에는 여지없이 최종 목표가 통일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향한 외침은 매번 좌절됐다. 1988년 통일운동은 전두환 정권을 이어받은 노태우 정권의 탄압으로, 1960년 통일운동은 5·16 군사쿠데타로 뿌리가 뽑혔다.

지금 불고 있는 남북 간의 훈풍도 통일을 일거에 앞당길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양상이 눈에 밟힌다. 북한이라면 질색을 하면서도 그 북한의 존재를 이용해 잇속을 챙겨온 극우보수진영이 통일로 가는 길에 저항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2030 젊은 세대들도 가담하고 있다. 과거에는 통일운동을 펼쳤던 세대다.

독재 체제가 대를 이어가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북한 정권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이라는 분석 등 여러 해석들이 나온다. 막상 통일이 현실화되면 정치·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부담 때문에 꺼릴 것이지만 그저 학습된 대로 통일을 외치는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는 솔직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하긴 30년 전 홍제동 대로에 드러누웠던 우리들 중 여전히 통일을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일부 젊은층의 주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이 침소봉대한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9년간 보수정권에서의 잘못된 통일 교육 때문이라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통일이 필요한 이유로 거론되는 모범답안 중 상당부분은 이제 점차 빛이 바래고 있다. 갈라진 한민족은 하나가 돼야 한다지만 분단이 70년을 넘어서면서 이제는 민족의식도 희미해지고 있다.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지만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아 보편적 이유가 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자원과 인구가 늘어나면서 경제발전을 이루고 강대국이 될 기회가 된다고 하지만 막대한 통일 비용을 감안하면 회의적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남북의 분단과 대결로 우리가 치르고 있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라도 통일에 대한 희망은 접을 수 없다. 그동안 많은 조작된 공안사건과 이로 인해 조성된 공안정국, 색깔론을 악용한 낙인찍기 등은 우리 사회를 분열과 후진성에 머물게 해 왔다. 이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밀양 화재참사와 남북 대화를 연계시키거나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으로 매도하는 행태 등이다.

남북분단의 비용은 젊은 세대에게 더 혹독하다. 병역의무가 대표적이다. 군 입대를 논산훈련소가 아닌 전방 사단의 신병교육대로 했었다. 우리 신교대 동기들은 6주간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사단의 각 부대에 배치됐다. 그러나 120명 남짓한 동기 중 2명은 제대를 하지 못했다. 한 명은 이등병 시절 철책 근무 투입을 준비하다 화장실에서 수류탄을 깠고, 다른 한 명은 순찰 중 장마로 흘러내려온 지뢰를 밟았다. 당시는 이 정도 사고가 뉴스도 되지 않던 시절이다. 그들이 죽는 날에도 그냥 서부전선은 이상 없었을 뿐이다. 신교대 동기들, 아니 그 시절 군대에 갔던 누구라도 이들처럼 될 수 있었다. 산술적 확률로 60분의 1이다. 지금의 군 사정은 그때보다 나아졌겠지만 언제든지 생명의 위험에 직면해야 하는 근본적 조건은 바뀌지 않았다. 또한 남북 간 군사적 대치가 없다면 매년 40조원에 달하는 국방예산을 복지나 청년 일자리 창출에 대폭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남북이 화해하고 전쟁의 위험을 줄여 통일로 나아가는 것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절실한 거다. 북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서 더 오래 살아갈 세대를 위해서.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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