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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음식은 맵고 짰으며, 싸움까지 벌어졌다. 잔치에 초대됐던 손님 일부는 현기증과 배탈을 호소했다. 동네방네 소문났던 잔치가 망한 것이어서 흉흉한 소문은 더 빨리, 더 멀리 번졌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그랬다. 중반기에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할 집권여당 리더를 뽑는다는 점에서 최근의 다른 행사와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였다. 하지만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음식은 맵고 짰다

잔치의 메인 셰프 격인 세 후보들이 내놓은 음식은 간이 엉망이었다. 왜 자신이 대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수긍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각자 ‘강한 정당’(이해찬 후보) ‘경제대표’(김진표 후보) ‘세대교체’(송영길 후보)를 내세웠지만 뚜렷한 비전과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보수정부 10년의 적폐를 씻어내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촛불민심’의 염원을 실행해야 한다는 책임의식과 역사인식도 절실하지 않은 듯했다.

후보들이 고작 ‘내가 진짜 친문이다’를 놓고 싸웠다. 이 후보는 “(문 대통령과) 격의 없는 사이”라고 했고, 송 후보는 “셋 중에 (제가) 가장 친문”이라고 했다. 김 후보는 이른바 ‘3철’ 중 한 사람인 전해철 의원을 포함한 친문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며 ‘문심은 나에게 있다’고 했다. 유명 셰프와 친하니, 무조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신임 당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윈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긴밀한 당·청 관계는 중요하지만 ‘내가 대통령과 더 친하니 뽑아달라’는 식은 곤란하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지하느라, 그간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여당의 현실만 부각시킬 뿐이다. 게다가 고용상황 등 경제지표 악화로 문 대통령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닥쳤고, 이제는 당이 청와대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상황이 됐다. 그런데도, 후보들은 앞으로도 청와대에 잘 업혀가겠다고, 내가 더 잘 업힐 수 있다고 경쟁을 벌인 것이다.

#싸움판이 된 잔칫집

세 후보들이 서로를 ‘몹쓸 사람’으로 만들면서, 잔칫집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졌다. 이 후보는 경쟁자들로부터 ‘독선적’ ‘불통’이라는 집중공격을 받았다. 김 후보는 ‘자유한국당에나 어울릴 정체성’을 가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송영길 후보에게는 ‘거만하다’는 딱지가 붙었다. 심지어 이 후보가 유세 도중 연단에서 내려오다 휘청거리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상대 후보 측에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유포했다는 논란까지 빚어졌다. 아무리 경쟁이지만, 정치적 동지라는 사람들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행동인가 의문이 들었다. 쟁반 깨지는 소리가 잔칫집 담장 밖으로 새어 나간 꼴이다.

분위기가 흉흉한데 잔치에 흥이 날 리가 없다. 안 그래도 맵고 짠 음식들은 더 맛없게 느껴졌다. 당 지지율이 전대 이후 계속 하락한 것이 그 증거다. 경제지표 악화도 잔칫집 마당에 그늘을 드리웠겠지만, 비호감 경쟁을 벌인 세 후보의 책임도 크다. 이런 상황을 그저 목도하거나, 물밑에서 유력 후보에게 줄대기에 바빴던 의원들도 크게 할 말은 없을 것이다.

#맛으로 증명하라

이 글을 마무리하던 25일 밤 이해찬 후보가 대표로 선출됐다. 집권여당 대표는 영광된 자리지만, 그는 상처만 잔뜩 입고 링에 오르게 됐다. 싸움꾼 이미지는 덧씌워졌고, 건강 문제는 언제든지 쟁점화될 수 있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의 반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당 관계자는 “적폐청산, 보수궤멸을 내세운 이 대표 등장으로 보수들이 결집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국당으로선 생큐”라고 했다.

이 대표 측은 억울해할 수도 있다. 경쟁자들의 집중공격으로 이미지가 지나치게 왜곡됐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당 등 보수야당이 아니라, 같은 당에서 나온 비판인 만큼 ‘근거 없는 음모’ ‘헐뜯기’라는 간단한 말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후보 등록 때부터 예견됐던 상황 아니냐. 이 대표가 유능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성격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히 있다”고 했다.

결국 경쟁자들의 비판이나, 야당의 은근한 환영이 틀렸음을 증명해야 할 사람은 이 대표 자신이다. 독선·불통 등 성격 논란이 더 불거져서는 곤란하다. 전대로 찢어진 당 수습은 물론 야당과의 협치도 어려워질 것이다. 청와대 국정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전대 과정에서 불거졌던 여러 논란들을 곱씹어 볼 것을 권한다. 그래야 이 대표가 내놓는 음식들이 맛있다는 평가를 받고, 취임 일성인 ‘민주 정부 20년 집권’도 가능해진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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