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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좌우의 문제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 추락,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치세력의 궤멸을 두고 그간 여러 가지 분석들이 제기됐다. 재벌과 가진 자들만 위했던 그들의 발언들과 정책, 시대에 뒤떨어진 과도한 북한 팔이, 희대의 사기꾼 이명박의 부패와 공공의식 결여, 국정농단을 방치한 박근혜의 무능력 등이 두루 거론됐다.

하지만 이런 분석들은 몰락 언저리를 보여줄 뿐 근본으로 파고든 것은 아니다. 정치세력의 부도덕과 무능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 않은가. 부도덕하고 무능했던 과거 세력들도 이렇게 망하지는 않았다. 국민 의식이 성숙해졌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이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그런 참에 ‘죽음에 대한 예의’라는 인간사 근본을 망각한 것이 이들을 이 지경으로 내몰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깊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아니다. 국군기무사령부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인양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희생자들을 ‘수장’시키는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식 잃고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부모는 거리를 헤매는데, 국가 권력기관은 “시체를 바다 또는 강에 흘려보내거나 가라앉히는 방법”이라며 수장을 권고했다는 사실에 기가 찼다.

단언컨대, 박근혜 청와대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수장을 진지하게 고려했음에 틀림없다. 여권은 선체 인양을 두고 “세금이 든다”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며 시간을 끌었고, 세월호특조위를 연장해달라는 요구에는 “세금도둑”이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들은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말을 퍼뜨렸다. 여론에 등 떼밀린 박근혜는 사고 1주기를 앞둔 2015년 4월6일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인양은 탄핵 뒤인 2017년 3월 이뤄졌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박근혜 청와대와 정부는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숨진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정략적으로 다뤘다. 사인을 ‘외인사’에서 ‘병사’로 조작하려 했으며, 유족들이 원치 않는 부검도 하려 했다. 당시 김재원 청와대 전 정무수석은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서창석 전 서울대병원장으로부터 백씨 병세를 보고받고 대책을 논의했다.

당시 여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백남기씨) 딸 이름이 도라지, 민주화가 뭐냐’는 말을 달고 다녔다. 백씨와 백씨 가족들은 일반 국민이 아니라는 것이 이 관계자 주장이었다.”

이명박 정권이라고 다르겠는가. 내년이면 10주기를 맞는 용산참사의 그림자는 아직도 걷히지 않았다. 2009년 1월20일 용산 남일당 건물 입점 상인들이 철거에 저항하자, 경찰은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강제진압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다. 하지만 이명박은 그해 1월 <대통령과의 원탁 대화…>에서 공권력의 강제진압으로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비판을 두고 “완전히 일방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명박은 사고 총책임자인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퇴하자 “괜히 아까운 사람이 나간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김석기는 사퇴 후 인터뷰에서 “미국 경찰이었으면 발포했을 것” “경찰 진압이 잘못이라는 판결이 난다면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은 그런 김석기를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했다.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공공의 질서를 위협한 상황”이라고 했고,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그런(과격시위)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취소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한국당의 잘못은 깊고 근원적인 것이다. 희생자와 유족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삶의 깊은 속내와 이야기들을 저들은 ‘떼쓰는 사람들’ ‘세금도둑’ ‘범법자’라는 단순하고 무지막지한 프레임에 가두려 했다. 국민들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 앞에 백배 사죄해야 할 집권세력은 오히려 무례했고, 뒤에서 음모까지 꾸몄다. 지금의 몰락은 쌓아온 죄에 대한 천벌이다.

더군다나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남아 있다. 세월호특조위 연장 요구를 ‘세금도둑’이라고 비난하고 백남기 농민 상태를 보고받은 인사, 용산참사의 책임자가 한국당 울타리 안에 있다. 이 자들이 사과했다는 말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이 ‘노무현 사람’이 대표가 됐다며 분칠하고, 찔끔찔끔 인적청산을 하면서 ‘쇄신’ 운운한다면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국민의 죽음을 모독한 무도한 과거를 참회하지 않는 한 보수 정치세력의 재기는 영원히 어려울지 모른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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