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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원전, 파워 업그레이드?

opinionX 2011. 1. 7. 16:06

황대권('야생초 편지' 저자)

        

몇 달 전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해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던 중 갑자기 원자력발전소를보고 싶다고 하기에 지역의 시민감시단에 있는 친구를 불러내 함께 찾아간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오랫동안 반핵운동을 해온 경력을 살려 일본인 방문객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원래 외국인 방문객이 찾아오면 홍보담당 직원이 안내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날은 우리가 가이드를 달고 왔으므로 홍보직원은 뒷전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윽고 방문이 끝나 막 나가려 하자 담당 직원이 배웅인사 겸 홍보성 발언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러자 다혈질인 우리 측 가이드와 직원 사이에 최근의 지역현안을 두고 말싸움이 벌어졌다. “뭐, 파워 업그레이드? 지역민들이 촌놈이라고 무시하는 거냐? 어따 대고 그따위 영어를 써서 사람들을 홀리려 드냐! 그러면 우리들이 못 알아먹을 줄 아냐?”
내용인즉슨 영광원자력발전소가 원전 1, 2호의 발전용량을 4.3% 증강하려 하는데 여기에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주민들과 제대로 협의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출력 증강’이라는 말 대신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를 사용하여 주민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시단 친구는 그의 말을 들어보면 출력 증강에 의한 해수온도 상승 피해에 대한 우려보다 발전소 측의 지역민 무시 태도에 더 격분한 듯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달 출력 증강에 대한 주민설명회가 무산되고 영광군의회가 반대성명서를 발표하는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주민 동의가 필수사항이 아니라며 강행의지를 표시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를 방문해 현황보고를 받고 있다. (경향신문 DB | 2009-12-04)


사실 이런 일은 어제오늘 불거진 게 아니다. 수년 전부터 곪아 오다가 토목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꺼번에 터지고 있는 중이다.
강원 삼척에서는 주민들이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고, 충남 서산의 가로림만에서는 조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성명서가 연일 발표되고 있다. 대규모 프로젝트 사업에는 반드시 그로 인해 피해 보는 주민들의 반대가 있게 마련이지만, 최근의 사태는 단순히 흘려듣는 지역뉴스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가늠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바로 에너지 문제를 대하는 정부와 국민의 태도이다. 국가주도 성장에 목을 매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지역이기주의의 병폐로 보고 여기에 관여하는 열성분자들을 보상금이나 올려먹으려는 비양심적인 세력으로 매도하기에 급급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야말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아주 억압적인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1인당 국민소득(GNP)이 2만달러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나라이다. 그러나 양적으로만 선진국에 올라섰지 질적으로는 아직도 후진국 소리를 면치 못하는 분야가 너무도 많다.
그 중 하나가 에너지에 대한 태도이다. 이미 대다수 선진국은 원자력의 비중을 줄이면서(최근 탄소 배출 감량 문제로 원전 건설이 재개되는 경향이 있음) 재생에너지로 주력을 이동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많을수록 좋다”이다.
정부는 에너지 사용의 증가가 마치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주요 지표인 양 발전설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1인당 전력소비량이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보다 한참 앞서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영광원자력발전소 홍보관을 나서며 출력 증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홍보직원의 능글맞은 미소를 잊지 못한다. “국민들이 전기를 작작 써야지….” 국민들의 소비행태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흥청망청하는 국민들 덕에 우리가 산다는 표정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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