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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가끔 일이 많이 몰려 쉬지 않고 달리다보면 감기 몸살에 심하게 걸릴 때가 있다. 하루 종일 꼼짝없이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서 끙끙 앓다보면 걸렀던 식사부터 전반적인 생활습관까지 떠올리며 아픔을 자초한 것은 아닌지 후회가 밀려든다. 반성을 하다가도 아픔이 길어지면 종국에는 ‘죽음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찾아올까’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무한한 듯 누리던 내 몸에 대한 사용권은 없어지고 방구석에 웅크려 오로지 내 몸에서 나는 숨소리와 고열만 느껴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보이는 시간과 공간의 유한함. 우리의 존재는 이 유한함 속에서 또한 얼마나 미약하게 잠시나마 깜빡이는 불빛일까. ‘살아있음’을 다만 느끼고 있자면, 일상에 파묻혀 믿게 되었던 시간의 직선적 흐름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 아픔과 회복의 순환이 만들어내는 곡선의 아름다움에 어느덧 숙연해지기도 한다.

언젠가 신은 왜 굳이 사람에게 ‘아픔’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일까 의아해했지만, 아팠던 것이 나으면 같은 세상도 정말 더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픔이라는 것이 오히려 살아있음에 대한 신호이자 누구나가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면, 우리 사회에서 아프다고 해서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는데, 어떤 사회에서는 왜 아프면 가난이 찾아오게 될까.

세 모녀가 자살한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주택 반지하 방. 28일 찾은 이 집 텔레비전 위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찍은 가족사진이 놓여있었다. 박은하 기자

몇 해 전 자살한 송파구의 세 모녀 사건은 오랫동안 아파서 일하기 힘든 큰딸과 취업준비하며 아르바이트하던 둘째딸, 그리고 식당에서 열심히 생활비를 벌어온 어머니 이야기의 끝이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삶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넘어져 다치게 되자 본격적으로 가난해졌다. 우연히 넘어진 것 같지만 아픈 몸으로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었다. 세상을 뜬 지 3년이 된 고 최인기님은 두 차례의 큰 수술을 받고 생계가 어려워져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자가 되었다. 그런데 아파서 도저히 일할 수 없었던 그에게 2013년부터는 ‘근로능력 있음’으로 판정이 내려졌다. 정부는 그에게 먹고살기 위한 급여를 받으려면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부 수급자’ 자격을 부여했다.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수급권이 박탈되기 때문에 그는 지하주차장 청소부로 일하다가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 나라마저 그에게 일을 해야만 밥값을 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꼭 이렇게 극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내가 연구를 하면서 만나게 된 아픈 노동자들도 아프기 시작하면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 때문에 일을 계속하다가 더 아프게 되기도, 또는 아예 일자리를 더 이상 구할 수 없으니 소득이 없어 결국에는 수급자가 되는 경우들도 있었다.

그동안의 많은 연구들은 아파서 가난해지는 경로보다 가난할수록 사람들이 더 아프게 되는 경로에 집중하였다. 특히 서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아프면 가난이 찾아온다는 가설은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가설은 아파서 일을 못하면 즉각적으로 소득이 단절되어 가난을 버티다 못해 자살을 선택하거나, 아파도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다가 정말로 죽는 사람이 있는 한국과 같이 슬픈 사회에서나 설득력이 있을 수 있겠다.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또는 노동력을 시장에서 교환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가난에서 벗어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상품화 지수가 높은 나라이다.

실제로도 한국은 국제적으로 비교분석해보면 이 상품화 지수가 높다. 반드시 일을 해야만 그나마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건강한 몸뚱이 자체가 가난을 피하기 위한 생존수단이 된다. 그리고 아픈 몸뚱이는 ‘하자 있는 상품’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 의료보장 사각지대가 넓어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계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꼭 재난적 의료비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동자가 먹고살기 위해 아픈데도 쉴 수 없고, 아파도 참고 일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러다가 정말 일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가파르게 가난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 사회라면 의료비 이전에 그 사회의 소득보장정책에 구멍이 있는 것이다. 아픔이 자연의 섭리가 아니고 가난으로 향하는 비참한 저주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만든 사회의 어느 부분은 심각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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