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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4일 서울시 청사 로비에서 ‘서울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도시 서민의 마을 이야기전’이라는 작은 전시회의 개막식이 열렸다. 이른바 ‘서울 성장사’의 이면에서 진행된 철거와 재개발, 강제 이주의 역사와 주거 약자의 생활상을 다룬 이 전시회의 개막식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민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내게 그 말은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권유로 들렸다.

1960년대 중반 불량주택 지구 정비니, 도심부 재개발이니 하는 사업들이 시작된 이래, 재개발의 현장은 어디나 전쟁터였다. 공권력과 자본권력은 재개발 지구를 ‘군사작전 지구’로 보았고, 그 땅에 정착한 사람들을 작전 지구 내 적성(敵性) 민간인, 또는 적군으로 취급했다. 당대 권력도 개발과 재개발의 군사적 성격을 굳이 은폐하려 하지 않았다. 1966년 서울시장이 된 김현옥이 내세운 시정 구호는 ‘돌격 건설’이었다. 건설에 방해되는 것은 모두 쓸어버리라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군사적 행정은 군사적 대응을 유도했다. 원주민들도 공권력에 대항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종로 3가, 청계천변, 경기도 광주, 사당동 등지가 차례로 격렬한 전쟁터가 되었다. 물론 전투는 언제나 공권력과 자본권력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고 패배자들은 다른 곳으로 강제 소개되었다. 그렇게 새로 ‘개발된’ 땅에 지어진 대형 고층 건물들은 일종의 ‘전승(戰勝) 기념비’라 해도 좋다. 오늘날의 서울은 수많은 전승 기념비의 전시장인 셈이다.

또 하나의 전승 기념비가 세워질 용산 재개발지구 (출처 : 경향DB)


물론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도시 재개발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들이 진압, 소개, 제거, 박멸이라는 군사적 방식에 따라 해결되었다. 한국의 군사문화를 5·16 이후 군사독재의 잔재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기실 한국인들은 20세기 거의 전 기간을 군사통치하에서 보냈다.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 전원이 군인들이었고, 해방 후에도 3년간 미군이 통치했다. 6·25 전쟁은 군사문화를 극단화했으니, 이후의 군사독재를 떠받친 것은 이런 문화에 지배된 사회였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는 별도로, 한국인들의 몸과 의식에는 한 세기 내내 군사문화가 각인되어 있었다.

20세기 최말기에 이르러서야 한동안 문민화니 민주화니 하는 바람이 일기는 했으나, 아직도 우리 사회의 심층에는 군사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일상을 전쟁처럼 여기며, 전투적 인간, 전사형 인간들을 모범으로 삼는다. 거리에 나붙은 수많은 현수막들에는 박멸하자, 척결하자 같은 전투적 구호들이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자기 계발이란 전투에서 이기기 위한 군사훈련과 다를 바 없다. 평화는 힘으로 지키는 것이라는 주장도 불변의 진리처럼 통용된다. 하지만 패배자의 손발을 묶고 입을 틀어막아 지키는 평화는 결코 진정한 평화일 수 없다. 그것은 더 큰 군사적 폭력이 동원되는 또 다른 전쟁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전쟁 같은 도시 재개발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적인 도시 재재발의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가 모든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훈련은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평화로운 삶도 훈련의 일상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양보할 여력이 있는 자가 양보하는 훈련, 불행한 사람들을 돕는 훈련, 타인의 억울함에 공감하는 훈련, 진정한 평화는 이런 훈련을 거듭하여 일상화할 때에만 얻고 지킬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류를 향해 “평화를 위해 행동하자”고 호소한 것도 아마 같은 취지일 것이다. 이 호소를 묵살하고 군사적인 문제 해결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계속 우리 사회 안에 있을 것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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