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박근혜 정부의 2기 경제 내각이 ‘가계소득 증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혹시나’ 하는 심정은 빛의 속도로 ‘역시나’로 바뀐다.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내놓은 3대 패키지 정책, 즉 △기업소득 환류세제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의 내용을 뜯어보면 말이다.
2013년 기업소득은 2008년보다 80.4% 급증했지만 같은 기간 가계소득 증가율은 26.5%에 그쳤다.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쳤다. 2008년 상용근로자의 임금은 월평균 280만1700원에서 2013년 329만8000원으로 연 3.5% 오르는 데 그쳤다. 그 기간 물가상승률이 연평균 2.8%였던 것을 고려하면 실질 임금상승률은 0%대. 지난 5년간 기업들은 돈벼락을 맞았고, 노동자와 서민들은 다람쥐 쳇바퀴를 돌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환류시키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내유보금에 과세한다는 방침도 ‘기업의 전체 세금이 높아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로 도루묵이 되었고,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기만 해도 대기업들은 임금을 올려줬다는 명목으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배당을 늘리면 세제 혜택을 준다? 배당소득을 늘리면 누가 가장 혜택을 받겠는가? 최소한 수십억~수백억원대의 주식 부자들과 재벌 총수 일가다. 최경환 경제 내각이 내놓은 정책은 기업소득 일부에 세금을 매겨 기업에 다시 돌려주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굳이 세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아도 정부가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환류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법정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거다. 한국의 임금체계는 500만명 노동자들이 밑바닥 최저임금에 맞물려 있고, 그 위로 시급 몇 백원씩 더 받는 노동자들이 피라미드처럼 쌓이는 구조이다. 즉, 밑바닥 최저임금만 올려도 전체 노동자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게 된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5210원, 내년은 370원 오른 5580원이다. 이걸 시간당 1만원 수준으로 올리면 생활임금에는 다소 못미쳐도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비용은 누가 대느냐고? 아니, 가계소득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게 기업소득 아닌가. 지불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어떻게 하느냐고? 대기업의 하청 구조에 편입된 중소기업에 대해 원청 대기업이 책임지면 된다.
장도리 7월 31일자 (출처 : 경향DB)
법체계를 뛰어넘는 발상 아니냐고? 현행 국가계약법을 보면 정부가 용역계약을 체결할 때, 업체 노동자 임금이 시중 보통 노동자 임금 수준을 유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시중 보통노임은 최저임금보다 40%가량 높다. 즉, 정부는 일정 수준 이하의 저임금 업체에 하도급을 줄 수 없다. 이런 법체계를 준용하면,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풀어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 보호에 사용할 수 있다.
그래도 PC방, 편의점 같은 데서 어떻게 시간당 1만원을 주느냐고? 예전에 PC방을 운영해본 후배에게 한번 물어봤다. 그랬더니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형님, 그러면 제가 뭐하러 PC방 운영합니까? PC방 알바로 뛰면 더 받을 수 있는데.” 그래, 뭐가 이렇게 자영업자들이 많을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들의 삶을 직장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절실하다.
그럼 그분들 일자리는 어떻게 만드느냐고? 정부도 알고 있다. OECD 최대 수준인 연간 2092시간에 달하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거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박근혜 대통령의 ‘절친’인 앙겔라 메르켈. 그가 총리로 있는 독일 정부가 근무시간 외에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전화하거나 e메일을 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독일에서 업무 과다로 ‘탈진 증후군’ 진단을 받는 사람들이 연간 1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독일의 연간 노동시간은 한국의 3분의 2 수준인 1393시간! 왜 이런 건 배우려고들 하지 않는지.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일반 칼럼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식 부르는 정치 (0) | 2014.08.25 |
---|---|
누가 사라지라고 하는가 (0) | 2014.08.18 |
평화도 훈련을 필요로 한다 (0) | 2014.08.04 |
아픔 낳는 정치, 아픔 품는 정치 (0) | 2014.07.28 |
노동인권교육의 중요성 (0) | 2014.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