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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최우선적인 국정과제 중 하나인 ‘적폐청산’을 두고 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자유한국당 쪽이 그것은 결국 정치보복일 뿐이라며 반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까지 맞장구를 쳤다. 하긴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때마다 이전 정권 담당자들의 비리를 파헤치는 일이 반복되곤 했으니 이번에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될 소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전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맞선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했던 과거 집권세력의 잘못을 징치하는 일이 비열한 정치보복과 같을 수는 없다.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는 것은 우리 헌법상의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적폐청산을 넓은 의미에서 ‘전투적(방어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독일에서 배워 우리 헌법도 채택하고 있는 이 민주주의 개념에 따르면,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민주주의라도 바로 그 토대를 부정하는 민주주의의 적에 대해서만은 관용적일 필요가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그런 적을 용인할 경우 민주주의 자체가 파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이 과거 저질렀던 일들은 그냥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비리가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를 그 근간에서부터 흔든 중대 범죄들이었다. 이런 범죄들을 정치보복이라는 비난이 두려워 단죄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우리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는 언제든 또다시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전투적 민주주의의 논리는 쉽게 악용될 수 있다. 김기춘 같은 유신체제 정초자들도 북한과 내부의 추종자들이라는 적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전투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예외적인 상황에서 제한적인 방식으로 실천되어야만 정당화될 수 있다. 적폐청산도 마찬가지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뜬금없이 공론장에 끌어들인 적폐청산이라는 표현이 지금 우리 사회와 정부가 당면한 과제를 적절하게 드러내줄지 의문을 품을 만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나 부정의를 일거에 해소하겠다는 뜻을 담은 그 표현은 점진적이고 절차적인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에 어딘가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적폐청산의 논리가 자칫 ‘종북척결’과 같은 정치 문법을 가진 것으로 오해될 여지도 없지 않다. 그래서 적폐청산의 정치는 민주적 헌정 질서의 회복과 재발 방지라는 명확한 목표 설정을 잊어서는 안된다. 스스로 가장 중요한 적폐청산의 대상인 검찰이 중심에 서는 역설도 넘어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참된 민주주의의 수호자는 전투적 민주주의 개념에 따른 위헌 정당 해산 제도 같은 헌법적 장치들이 아니라 사실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지난 촛불혁명에서 우리 시민들은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말하자면 ‘민주적 우환의식’을 갖고 광장에 모여 절제의 미덕을 함께 갖춘 놀라운 열정으로 무너져가는 민주주의를 되살려냈다. 4·19, 5·18, 6·10을 거치고 촛불혁명으로 부활한 한국 민주주의의 경험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시민들의 참여와 감시와 견제야말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심화시킬 수 있는 핵심 동력임을 보여주었다.

이 경험이야말로 우리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민주주의는 결코 한꺼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새로운 상황과 도전에 직면하여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천하고 그 적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 새로운 방안들을 끊임없이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이제 적폐청산을 넘어 좀 더 확고하게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 ‘파수꾼 민주주의’(존 킨) 체제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민주주의는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과 조직을 공적인 감시와 통제 아래 놓이게 함으로써 권력 집중과 부패를 막아내는 다양한 실천과 기구들로 이루어진다.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서 시민들이 좀 더 성숙한 민주적 시민성을 갖추도록 하는 데서 시작해서, 더 많은 시민사회적 조직들이 활성화되도록 하고,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시민의회’ 같은 제도들을 도입해야 한다. 언론이 권력 감시와 비판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모든 국가적 권력 행사 과정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더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검찰을 감시하고 견제할 독립적인 ‘공수처’ 같은 기관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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