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촛불혁명 1주년을 맞은 요즈음 민주주의 논쟁이 한창이다. 그 혁명에 참여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던 시민들의 열망을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처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지가 쟁점이다. 최장집 교수와 박상훈 박사의 비판은 아주 신랄하다. 그런 식의 이해는 대의제를 본성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오해에서 비롯되었단다. 심지어 의회를 우회하려는 문 대통령 식의 정치는 군주정의 행태일 뿐이라고 극언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야말로 오히려 촛불혁명이 열어 놓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임채원 교수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촛불혁명은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언 모멘트’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포칵의 개념으로, 시민들이 위기 상황에서 자신들이 속한 공화국의 불안정성을 확인하고 충만한 시민의식을 갖고 해법을 찾아 나서는 계기를 가리킨다. 우리 시민들이 딱 그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나란히 놓아둔 종이컵들에서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이 ‘촛불은 계속된다’고 적힌 종이컵을 놓고 있다. 이준헌 기자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고는 하지만 주권자 시민들이 언제나 이 나라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민들은 국정농단 사태에 직면해서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심각하게 고장 나 있음을 깨닫고 “이게 나라냐?”고 물으며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놀라운 시민적 덕성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외쳤다.

우리 시민들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일부 특권 세력의 사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데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그 세력의 충실한 하인들이었던 일부 ‘정치계급’에 대해서도 깊은 실망을 드러냈다. 본디 민주공화국은 ‘데모스’, 곧 인민들이 전적으로 지배를 행사하는 좁은 의미의 민주정의 요소와 함께 엘리트들의 일정한 지위와 역할을 인정하는 귀족정의 계기도 가진 ‘혼합정체’이기는 하다. 실제로 대의민주주의는 그런 엘리트들의 정당한 통치를 보장하는 기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허울뿐인 민주공화국에서는 지금까지 과두 특권 세력과 그 세력을 대변하는 정치계급이 전체 정치를 자신들의 부패를 은폐하고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해 왔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선거제도를 악용하고 공론장의 민주적 정당화 과정을 악랄하게 왜곡한 덕분이다. 지난 촛불혁명에서 시민들은 그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스스로가 나서 그런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던 것이다.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새삼 주권자임을 확인하고 스스로 정치 과정의 중심에 서겠다는 선언을 했을 때, 그것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은 당연히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민들이 의회와 정당들을 불신하는 것은 그것들이 정작 가장 본질적인 책무, 곧 시민들을 대의하는 데서 근본적으로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국민들이 모든 사안을 직접 결정하는 무슨 ‘국민투표정치’ 같은 걸로 의회정치를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요구의 핵심은 정치가 시민들의 요구에 더 잘 반응하게끔 정치의 행태와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감시하며 견제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요점은 현재의 사실상의 과두정을 혁파하고 참된 ‘민주적’ 공화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추구하는 과두 특권 세력의 ‘귀족정치’에 대한 거부와 경계를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나 정치혐오라 해서는 안된다.

정당정치가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요구도 그 자체로는 옳다. 그러나 그런 요구는 우리 정당정치가 왜 아직도 제대로 성숙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성찰과 함께할 때라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촛불혁명의 가장 중요한 성취 가운데 하나는 우리 정당들, 특히 민주당과 같은 개혁적 진보를 자임하는 정당의 발전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것은 곧 민주당이 ‘힘 없는 사람들의 힘’, 곧 ‘시민적 권력’을 위한 정치적 기구로서 자기 정립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겨울 시민정치와 의회정치가 서로 호응했을 때 어떤 정치적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민주당은 바로 그 역사적 교훈을 그 정체성의 중핵에 새겨둘 수 있어야 한다.

이념과 핵심 가치는 물론이고, 조직 형태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주권자 시민의 합리적 이해관계와 요구라는 기반 위에 세워야 한다. 지금 민주당이 이런 일을 아직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걱정이지 너무 많이 해서 문제는 아니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