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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논문으로 나온 <복학왕의 사회학>이 책으로 얼마 전 출간됐다.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라는 부제가 인상적이었으나, 내용은 절규보다는 가족에게 기댄 청년들의 세계 이야기였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가족, 가족들이 바라보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지방대생은 공부로 성취를 하기는 어려웠기에 청년세대 모두가 도전하는 경쟁에서 이길 생각은 도무지 못한다. 공무원 시험도 도전은 해보지만 집중력 있게 돌파하기는 어렵다. 토익을 치르라고 권해도 해봐야 안된다는 생각에 고득점을 올릴 만큼 집중하지 못한다. 결국 지인을 통해 지역사회에 열려 있는 열악한 일자리를 찾게 된다. 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가르치고 상담을 통해 만나는 학생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들이 생각하는 가족이었다. 책에 나온 지방대생들은 가족을 통해 세상을 인지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좋은 삶이라는 그들은 어떤 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적당히 벌고, 적당히 즐기면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넓은 세상에 나가 다양한 사람과 경쟁하고 협력하고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실패하는 청년들과, 어떻게든 자녀를 후원하거나 보살피려고 마음 쓰고 돈 쓰는 부모들의 모습이 겹쳤다. 돌이켜보면 꼭 지방대생의 모습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보다 열 몇 살이 많은 내 경험도 반추하게 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스무 살이면 어른이므로 빨리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자마자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알바였다. 용돈도 스스로 마련하고, 돈을 더 많이 모으면 배낭여행도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첫 여름방학 때 한 달간 문구점에서 일해 몇 십만 원을 간신히 모을 수 있었다. 공부에 지장 받지 않는 알바가 ‘과외’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고 어떤 대학을 다녀야 과외를 잘 구하는지도 알게 됐다. 고시나 공무원 시험 같은 장기간 집중해서 해야 하는 ‘준비’는 하지 않았는데, 알바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부모님도 행정고시 등을 권하긴 하셨으나 그저 그게 좋다 정도였다. 고시생의 생활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웠다. 난 공무원은 재미없어 싫다며 흘려듣곤 했다. 주변에 공직자가 많거나 전문직이 많았다면 다른 전망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대학 선배나 동기 중에 고시에 붙은 사람은 드물었고 대부분이 기업에 취업을 했다. 친척 중에도 공무원은 거의 없었다. 자영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월급쟁이였다. 공적 영역의 세계가 보일 리 없었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가 싫어서 군대도 장교로 갔고, 그 돈으로 대학원을 다녔다. 대학원을 마칠 때쯤 돈이 떨어지자 기업에 취업했다. 결혼도 내가 벌어서 내가 하는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 이름으로 사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 말 듣지 않고 맘대로 잘 살아서 나름대로의 성취를 이뤄내는 것. 나와 주변 친구들의 모토였다. 점점 그런 친구들만 더 많이 만나게 됐다. 사업하는 친구, 박사하는 친구, 글쓰는 친구, 정치하는 친구 등등. 내 20대는 부모님이 예상하는 궤도를 이탈해 버렸다. 덕택에 부채의식은 비교적 작게 유지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고생을 연민하지만 미안해하지는 않게 됐다.
나는 그나마 기회가 주어지던 시기에 살았고, 운이 나쁘지 않았다. 2000년대 후반 ‘청년 논객’을 찾는 흐름이 있어 글쓰기를 할 수 있었고,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언론사에 많았기에 입소문이 빨리 퍼져 지면에 데뷔할 수 있었다. 서울 소재 대학을 나오면 취업은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였고 특이한 전공을 회사가 좋게 봤기에 입사 시험도 운 좋게 통과할 수 있었다. 한두 해 늦게 취업준비를 한 후배들은 줄줄이 고배를 마시다 공무원 시험을 보러 사라지기 일쑤였다. 기회 구조와 살아온 궤적이 운 좋게 어우러졌기에 내 고집도 지킬 수 있었던 것에 가깝다. 문과생의 취업은 이제 시쳇말로 ‘넘사벽’을 넘는 일이다.
고용난으로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꿈이 소박해지고 성취에 대한 욕심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자녀가 객관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할 때, 제대로 그리지도 못하는 꿈을 응원하기보다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부모가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관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청년과 부모 모두 나이가 먹지만, 청년은 어른 되기에 실패한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지방대생들은 수업만 끝나면 집으로 향한다. 쉬는 시간에 집에 가서 쉬고 오는 학생도 적지 않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 아이 키우는 자녀를 기대했던 부모는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한국의 취업은 사회문제이기도 하지만 가족문제이기도 하다. 입시전쟁에서 취업전쟁으로 테마가 바뀌었을 뿐이다. 고령화도 문제지만, 사회적 역할 없이 30대가 되는 청년이 늘어나는 건 분명 중대한 문제다. 세대문제만도 아니다. 여력이 되는 부모의 보살핌과 내버려두는 부모의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으로 행사되는 영향력 차이도 더 커졌다.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가 그렇다. 경쟁에서 승리해본 경험을 가진 청년들과 나이만 먹으면서 기준점을 찾지 못하는 청년들의 활력 격차는 수십년 동안 더 커졌다.
공무원과 공기업의 채용을 확대하는 것은 일정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부모들과 소박한 꿈을 갖게 된 청년들이 당장 원하는 일자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대다수가 공무원과 공기업만 바라보는 상황이어서 경쟁에서 승리해본 청년들만 그 자리를 채울 것 같다. 다수를 보건대 대책의 우선순위는 안정된 직장의 채용보다 안정적이지 않은 직장을 다녀도 문제 없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중소 제조기업의 성장이 절실하다. 혹여 회사가 도산을 하거나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쉽게 이탈하여, 배움의 기회로 만들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고용보험은 좀 더 교육과 향후 직업적 전망과 엮여야만 한다. 그래야 청년들이 가볍게 부모의 품을 떠나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이 겁먹지 않고 활기차게 가족 밖 다른 세상과 마주하면서도 자기 중심을 잡는 어른이 되게 할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제 몫을 하지 못하고 나이만 먹는 자녀를 결혼시킬 때까지 젊은 척하며 살아야 하는 부모들이 편안하게 자신을 찾으며 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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