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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끝났다. 학교 정문 앞 광장에 ‘컴활(컴퓨터 활용능력)’ 부스가 생겼다.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따는 비용이 공짜란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들고 이야기를 전한다. <미생>의 장그래가 인턴을 시작할 때 갖고 있던 자격증이다. 공무원시험에서 컴활 1급은 1%, 2급은 0.5% 가산점을 줬는데 지난해부터 가산점이 없어져 사장된 자격증에 가깝다. 면담에 찾아온 학생들에게는 공부를 좀 해야 하는 다른 ‘영양가 있는 자격증’ 몇 개를 일러줬다. 고용노동부와 함께하는 사업도 기억에 남는다. ‘문과생을 위한 개발자’ 프로그램이다. 자바 스크립트 같은 프로그래밍 코딩을 배워 ‘반응형 웹프로그래밍’ 일자리까지 얻게 하는 것이 목표다. 취업 실적이 ‘쏠쏠했다’고 한다. 고학년 몇몇에게 들어보라 했는데 결국 바람맞았다. 하고 싶은 거랑 딱 맞지 않고, 방학 내내 수업을 들을 자신이 없다고 한다.

학과에서는 현장실습(인턴십) 모집을 했다. 10군데쯤 되는 현장실습이 가능한 공공기관, 기업, 사회적기업이나 NGO 중 한 군데를 다녀오면 학점을 준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시대에 뭐든 배우고 현장실습이라도 열심히 해서 밥벌이를 한다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이력서에 쓸 ‘단출한’ 몇 줄이 얼마나 절실한지 나도 취업준비할 때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참여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의욕 있는 몇몇만 참여한다. 취업 면담 때마다 마주하는 결국 ‘공무원시험’만 선택하게 될 학생들을 생각하면 당장 모조리 모아 강권하고 싶기도 하지만, 스무 살도 넘은 성인에게 그럴 수는 없다. 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에 덜컥 취업시킬 자신도 없다. 이 지역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정도 가는 게 도전해볼 만한 목표일 텐데, 자격증과 현장실습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공기업·공사 채용시험으로 쓰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준비반을 학교에서 열었는데, 누굴 보낼까 고민하는 사이 정원이 마감됐다.

대학을 나와 ‘건실한’ 회사에 쉽게 취업할 수 있었던 시대가 끝난 지는 20년이 넘었다. 대학이 취업 학원이라는 소리를 들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몇 년 전, 신임교수들은 SCI, SSCI, KCI 등 지표에 포함되는 연구논문을 쓰느라고 등골이 휜다고 했는데, 이제는 제자들의 취업 역시 학과와 대학의 평가에 연결되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쓸 수 없게 됐다. 일주일 전 발표된 자율개선대학 선정(박근혜 정권 시절 대학구조개혁 평가의 바뀐 이름) 결과에 많은 대학이 숨죽이고 있었다.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되어야 재정 제약과 정원 감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령 인구가 줄었다. 2020년부터 지금 정원대로 학생을 뽑다간 30% 정도의 대학(주로 지방대)들은 한 명의 학생도 뽑을 수 없게 된다. 유학생을 그만큼 유치하지 않는 이상 신입생 정원을 줄여야 한다. 학과 폐지도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하기에 앞서 저출산사회의 여파에 어찌 대응할지부터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대학교육의 효용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다.

퇴임한 선배 교수는 “사회학 이론만 ‘빡세게’ 가르쳐 봐야 우리도 힘들고 학생들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사회학 수업도 ‘응용적’으로 변했다. 많은 수의 강의식 수업들을 프로젝트 수업이나 실습 수업으로 바꿨다. 학생 간 상호작용을 촉진시키기 위해 칠판도 강의실에 여러 개 설치했다. ‘높은 강단’은 ‘눈높이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 능동적으로 사회학이라는 도구상자를 응용해 사회에서 제 몫을 해내는 어른으로 키워내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다.

그럼에도 공허하다. 학생들의 기초역량을 채우는 일은 생략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다. 고등학교 이과 수학을 이수했다고 가정한 공과대학 수업이지만, 지방대에서는 고등학교 수학을 다시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기 일쑤다. 그마저 힘들어 그만두는 학생들도 있다. 인문사회계열에서는 단 한 권의 책도 정독해 보지 않은 학생들에게 논리적인 글읽기와 글쓰기 훈련부터 시켜야 하기도 한다. 잠재성이 터진 학생들도 종종 있지만, 헤매는 학생도 적지 않다. ‘배울 수 있는 몸’을 10대에 만들지 못한 학생들에게 그런 습관까지 만드는 건 학생이나 선생이나 모두 고역이다. 취업시장에서 혹여 불이익이라도 받을까 싶어 학점이라도 잘 챙겨서 졸업시킨다 한들 고등교육을 잘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도의 지원과 자격증 몇 개와 운이 모두 따라 취업을 한들 그 일자리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 것일까. 학생들의 부모들만 해도 정년이 사라지고 평생직장이 사라진 가운데 살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도 부지기수다. 고용보장을 정부가 모두 지켜낼 수는 없다. 고용보험을 강화해 실업에 처해도 소득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게 해야 한다. 재취업도 알선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새롭게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정보를 잘 조합할 수 있는 학습의 기초역량, 쉽게 말해 ‘국영수’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1970년대는 ‘특성화 교육’의 시대였다. 당장 현장에서 필요한 노동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특성화 기계공고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1990년대 초반까지 50만명이 넘는 공고 출신들 외에도 회사 직업훈련원이 ‘찍어낸’ 노동자들이 현장을 가득 채웠다. 초창기 기계공고를 들어간 사람들은 정년을 채웠지만, 후배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갖고 있는 특화된 기술의 효용이 떨어진 셈이다. 1980년대 교육개발연구원은 “세분된 기술 습득에 치중하지 말고 일반적 기능의 습득과 응용력을 배양하여 산업의 구조적 고도화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직업교육을 비판했다. 지금도 이런 비판이 유효할 것만 같다. 기술의 진화 속도와 산업의 구성은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뜬다고 코딩이라도 가르쳐 취업시키려는 절박함에 공감하더라도, 고등교육은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깊게 고민하고 시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미국도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기초역량을 강조한다.

‘자기주도학습’의 화신인 명문대에 간 모범생들은 그 문제를 스스로 풀려고 ‘열공’한다지만 나머지들의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응원하며 성공만 독려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정책 방향으로는 틀린 것 같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에 내실의 차원에서 교육과 고용 정책을 함께 점검해야 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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