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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가 끝났다. 언론에 따르면 해외로 나간 사람만도 100만명이 훌쩍 넘었다고 한다. 나와 같은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어차피 언감생심이었다. 직장인들의 휴일이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손님을 맞이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연휴에는 더더욱 쉴 틈이 없다.
인터넷 댓글을 보니 자영업자만 연휴 때 일했던 것이 아니었나 보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많은 이들이 연휴에 일해야 하는 고충을 토로하고 있었다. 대기업 담당자가 휴가 가기 전 대량 주문을 쏟아내며 “연휴 직후에 납품 완료해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연휴 기간에 야근을 했다는 슬픈 이야기들이 넘실거렸다. 대기업 담당자도 그 조직 내에서는 한낱 월급쟁이일 따름이고, 그 역시 평소 야근에 시달리다 간만의 휴식을 만끽했을 터이다. 모두가 만족할 휴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겠으나 무언가 세상이 더더욱 각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빨간 날이 몰릴 때면 공항 이외에 주요 관광지와 휴양지는 항상 붐빈다. 주차장은 전쟁터이고 인파에 휩쓸려 어디로 가는지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몇몇 양심 없는 상인들이 이때구나 싶어 바가지 요금을 씌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바가지 요금을 지불하는 이들은 이 가격이면 차라리 해외를 나가겠다며 이를 박박 간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매년 해외로 출국하는 여행객들의 수가 최대치를 갱신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근본 이유는 바로 원할 때 휴가를 가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기업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원할 때 가지 못하니 남들 다 간다는 여름휴가나 이번 5월 초 같은 황금연휴 때 휴가가 몰리는 것이다. 상인 입장에서도 1년 내내 균일하게 손님이 찾아들면 바가지를 씌울 일이 없겠지만 1년에 한두 번 반짝 손님이 몰려드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격표를 올리게 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기분은 상하고, 이미지는 나빠지게 된다. 그로 인해 국내여행에 돈을 쓰지 않게 되고 이것이 다시 바가지 상술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기업문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내 전공인 옷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20년 전인 1990년대부터 X세대니 신세대니 N세대니 하며 개성과 창의력에 대해 언론이 무수히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들이 기업의 중심에 선 지금 과연 그러한가? 와이셔츠 하나 편하게 고르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수이다. 어떤 기업은 보수적인 문화로 인해 하얀색 셔츠 이외에 어떠한 디자인도 허용되지 않는다. 스트라이프와 체크 무늬는 언감생심이다. 손목에 이니셜을 새기는 것조차도 꺼리는 경우가 많다. 통상 흰색 셔츠에는 대부분 밝은 파란색으로 이름을 새겨주는데 그것이 윗사람 눈에 띄면 곤란하다며 눈에 잘 안 띄는 회색으로 해달라거나 아예 이니셜을 넣지 말아달라고 요구받는 일도 허다하다.
셔츠도 그러할진대 슈트라고 별 수 있으랴. 상의와 하의의 색깔이 다른 콤비슈트는 내가 알기로 국내 대기업 중에 허용되는 곳이 거의 없다. 더블 슈트도 개개인의 선호 때문도 있겠으나 너무 튄다는 이유로 공공연하게 입기는 여의치 않다. 1990년대 후반 유행했던 화려한 스트라이프 디자인은 사라지고 최근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무지 원단만 찾고 있다. 넥타이도 화려한 색깔과 디자인을 가진 것은 지적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로 많은 기업의 남성 종사자들은 사실상 유니폼에 가까운 슈트 차림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의 개성을 옷차림을 통해 발현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경험상 보면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자유롭고 창의적인 선택을 한다. 업종으로 보면 연예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화려하고 튀게 입는다. 골프용 백바지를 만들어 입고 단추를 붉은색으로 한다든지, 더블슈트에 커다란 도트를 스트라이프 형태로 해넣는다든지, 콤비 캐주얼 정장에 스니커즈를 신어 정장의 멋스러움과 캐주얼의 발랄함을 동시에 표현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기업 종사자들도 간혹 주말을 위해 그런 옷을 고르는 경우가 있지만 평소 보수적인 복식을 하다보면 갈수록 그러한 파격적인 선택을 하는 확률이 줄어든다. 결국 캐주얼 복장도 ‘튀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보통의 복장으로 수렴하게 된다.
옷 하나도 마음대로 못 입는 문화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될 리 없다. 이걸 입으면 튀지 않을까, 저걸 입으면 팀장이 뭐라 하지 않을까 하며 일상적인 자기 검열을 하는 젊은 손님들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재미있는 제목으로 유명해진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는 책처럼 나도 말하고 싶다. “아, 창의력 따위 됐으니 옷이나 편하게 입게 해주세요.” 휴가도 제발 원할 때 갈 수 있게 해주시고.
이득규 | 맨체스타 양복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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