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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알게 된 인터넷 동호회가 있다. 기계공학 관련 부품을 조립하는 법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회다. 부품을 조립하고 완성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제작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 서로 질문도 하고 의견도 공유하는 동호회였다. 이용자들의 대부분이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었는데 이제까지 내가 본 어떤 인터넷 동호회보다도 매너 있게 운영되고 있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자세하고 성의가 있었으며, 누군가 완성해서 올린 조립품에는 진심 어린 격려의 글이 붙었다. 악플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자녀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인터넷 환경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허락할 때 대부분 부모들의 첫 고민은 이 스마트한 기기의 한계를 어디까지 정해놓아야 하는가일 것이다. 인터넷이나 게임 혹은 채팅방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적절한 소통 수단이며 정보 공유의 장이지만 미성년자들에게는 어쩐지 각종 유혹과 위험, 일탈의 시작인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빌 게이츠도 자신의 자녀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한 건 14세 이후부터라는 기사는 그런 믿음에 대한 증거처럼 부모들에게 공유된다.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지만 그보다는 스마트 기기를 멀리하고 독서를 하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인터뷰도 보았다. 그렇다면 스마트 기기로 하는 독서에 대해 빌 게이츠는 어떻게 생각할까. 독서는 반드시 종이를 만지는 아날로그적 행위가 뒤따라야 가치가 있다고 대답할 것 같지는 않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입장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다수의 의견은 물론 규제를 기반으로 한 사용이다. 필요악쯤으로 여기는 태도다. 소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지금 청소년 세대에게 스마트폰은 더 이상 선택적 소유물이 아니라 환경 그 자체라는 것이다. 청소년 세대가 살아가고 있는,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환경의 첨단을 가늠해서 주어진 환경을 주도하게 만들어야지 기성세대가 살아온 환경적 판단에 의해 가치 판단을 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다. 전자가 두려움이라면 후자는 신뢰다. 전자의 두려움이 스마트폰 보급률에 따른 여러 청소년 사회문제의 실제적, 경험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면 후자의 두려움은 어떤 면에서 막연한 긍정이고 낙관이다. 앞서 내가 본 것은 긍정적 사례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예외적이고 드문 사례일지도 모른다. 게임과 동영상, 채팅에 빠진 자녀들의 위험 세례가 훨씬 다양하고 빈번하며 찾기 쉬울 것이다.

최근 청소년들이 푹 빠져 있는 건 유튜브 같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동영상이나 게임을 찾아보는 줄 알았는데, 스스로 동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올리는 자칭 ‘유튜버’인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인기 게임을 잘하는 법을 알려주거나 미니어처를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초등학생도 적지 않다. 앞서 내가 찾은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도 적지 않은 회원이 과학 창작물 관련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불법적이고 저속한 혹은 쓸모없는 콘텐츠를 소비하게 될까봐 규제 운운의 잔소리를 했는데 소비를 넘어 자신들의 창작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놀라운 발견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세계 바깥에서 자기들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가상현실인 동시에 실제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가 두려운 건 아이들이 경험할 악플이나 중독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 우리가 모르는 형태로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도 모르겠다. 중독에 의해 실제 현실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특정 세대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그 세계에 대해 간섭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다음 세대를 통제하고 싶은 지나갈 세대의 욕망은 아닐까.

지금의 청소년 세대에게 있어 현실 혹은 시공간의 개념은 기성세대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의 화두인 4차 산업혁명은 아마도 우리는 모르고 그들은 아는 그런 시공간 위에서 일어나게 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지는 않을 터이니 서로 간에 언어는 조금 통했으면 좋겠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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