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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다른 학교에서 무단결석 누적으로 졸업하지 못하고 이듬해 다시 중학교 3학년에 복학할 학생이 후배들과 같이 다니기 민망하다며 복학 후 전학이라는 형식으로 전학 왔다고 한다. 처음 며칠은 잘 나왔다. 하지만 주말 한 번을 거치고 월요일이 되자 아니나 다를까 다시 결석. 그렇게 사흘을 연거푸 결석했다. 그러다가 목요일 오후에 학교에 와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어떻게든 3학년을 마쳐서 졸업은 하고 싶은데, 이 학교에서는 계속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드니 전학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이유가 걸작이었다. 공부에는 생각이 없고 출석일수만 채워서 졸업하고 싶은데, 이 학교는 잠을 잘 수도 없고, 딴짓을 할 수도 없고, 어떻게든 수업에 참여해야 해서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이유로는 전학이 되지 않았고, 그 학생은 수업에 참여하며 학교에 다녀야 했다. 늘 방치되어 있던 것을 자유로 착각하고 살다,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힘들었던 것이다.

오해가 없기 바란다. 그 학교 선생님들이 한 사람의 학생도 놓치지 않고 배움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애를 쓰는데, 다른 학교 선생님들은 공부 못하는 학생을 내팽개쳐 둔다는 뜻이 아니다. 5년마다 순환 근무하는 공립학교에서 학교마다 선생님들 간 의미 있는 차이는 거의 없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학급당 인원수였다. 그 학교는 스무 명, 이전 학교는 스물다섯 명. 고작 다섯 명의 차이.

고작 다섯 명의 차이가 뭐 그리 크겠느냐 하겠지만, 교실에서 스무 명과 스물다섯 명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가령 이는 원탁토의 방식 수업을 할 때 한 줄짜리 원을 만드느냐 뒷줄이 생기느냐의 차이다. 네 개의 모둠으로 나누어 협력학습을 할 때 모둠을 네 명으로 하느냐 다섯 명으로 하느냐의 차이이기도 하다. 다섯 명으로 편성된 모둠은 소외되거나 무임승차하는 학생이 나타날 가능성이 네 명으로 편성된 모둠보다 훨씬 크다. 이런 이점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토의토론, 협력학습 등 다양한 학생 참여형 수업을 시도하는 선생님들이 훨씬 많았다. 학생과 선생님 간의 정서적 친밀도도 높았다. 다섯 명은 교실에서 분단 하나 차이다. 네 분단은 한 눈에 들어오지만, 다섯 분단은 그렇지 않다. 이는 선생님이 수업 중에 학생들을 모두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는가, 아니면 한쪽을 살피면 다른 쪽이 사각이 되는가의 차이다.

문제는 그 학교가 좋은 여건에서 수업할 수 있게 된 까닭이 훌륭한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해당 지역의 일시적인 인구 감소에서 발생한 우연한 행운이라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이 행운이 유지되고 있지만, 조만간에 학생수 감소로 인한 학급 수 감축 혹은 학교 간 통폐합 압력이 들어오고, 그렇게 되면 결국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스물다섯 명, 나아가 서른 명짜리 학급이 되고 말 것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교육혁신에 대한 기대가 높다. 그런데 교육은 섬세한 과정이다. 오히려 눈에 띄는 큰 교육 개혁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거창한 것보다는 오히려 이런 ‘다섯 명의 차이’와 같은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교육혁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학교가 누렸던 행운을 전국 어디에서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학교에는 “고작 이거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할 만한 것들이 많고, 이런 것들은 학교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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