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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고려인 150년

opinionX 2014. 9. 14. 20:30

몇 해 전 러시아 연해주 체르냐치노에 갔을 때다. 체르냐치노는 우수리스크시 서쪽 깊숙한 산간 지역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한·러 공동으로 유적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군용 트럭을 개조한 발굴용 차량을 타고 어렵게 현장에 접근해 취재를 하던 중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발해인 주거지에서 모습을 드러낸 쪽구들을 보고서다. 이 구들에서 온기를 느끼던 사람의 후손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혹시 나는…!

뒷날 이 발해의 쪽구들 아래층에서 옥저시대의 ㄱ자 쪽구들이 발굴됐다는 더욱 놀라운 소식을 듣기도 했다. 체르냐치노 일대는 옛 소련 시절 고려인 마을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발굴지 인근 숲에 고려인 집터도 있었다. 1937년 9월 추수를 앞두고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고려인 18만명이 세간살이조차 제대로 챙길 틈 없이 떠난 흔적의 일부였다. 2300년 전과 1300년 전, 그리고 100년도 안되는 최근까지 한민족의 자취가 이렇게 한곳에 켜켜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19일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 이주 고려인 동포들이 국회 환영식에 참석,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_ 연합뉴스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러시아와 옛 소련 지역에 흩어져 사는 한국인 교포를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연해주는 이들의 역사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선조가 농토를 일구고 독립운동을 벌이고 중앙아시아행 죽음의 열차에 몸을 실었던, 땀과 한이 서린 땅이다. 소련 해체 후 새로운 핍박을 피해, 또는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찾아 귀환하고자 하는 현실적 고향이기도 할 것이다.

올해는 고려인 대륙 이주 150주년이 되는 해다. 가난에 시달리던 조선 백성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1864년이라고 한다. 이른바 ‘갑자도강(甲子渡江)’에서 ‘현대판 디아스포라’까지 고려인은 가장 고단한 삶을 살았던 한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국인 국내에 들어와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고려인도 현재 수만명에 이른다. 재외동포재단은 올해 한인의날(10월5일) 행사인 ‘2014 코리안 페스티벌’을 고려인 이주 15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로 꾸민다고 한다. 주제는 ‘코리안 데이지, 유라시아에 핀 꽃’이다. 중앙아시아에서든, 연해주나 모국에서든 고려인이 150년 한과 고난에서 벗어나 희망과 용기를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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