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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증도가자’ 최고 금속활자 판단 언제까지 미룰 텐가그제는 ‘인쇄문화의 날’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석보상절을 한글 금속활자로 찍어 낸 1447년 9월14일을 기념하고자 26년 전 제정됐다고 한다. 정부는 올해 특별히 인쇄문화산업 공로자에게 주는 문화포장을 문화훈장으로 격상하고 대통령, 국무총리, 문화부 장관 표창 등도 수여했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결’(이하 직지)과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보유한 인쇄문화 강국의 위상에 걸맞은 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부가 정작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인쇄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일에는 소홀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증도가자(證道歌字)’에 대한 문화재청의 직무유기에 가까운 무관심이 단적인 예다. 2010년 한 사립미술관이 직지보다 138년이나 앞선다는 고려 금속활자 실물인 증도가자를 공개해 학계와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당시 서지학 전문가는 13세기 불교 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한 활자라고 주장했다. 첫 공개 뒤 국내외 전문 연구기관을 통해 수차례 먹 성분 탄소연대 분석 등 과학적·서지학적 검증을 거쳤고, 국내·국제 학술회의와 논문 등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서울 인사동 다보성미술관에서 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 목판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이상 빠른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활자인 <증도가자>를 공개돼 관심을 글고 있다.


소장자는 증도가자 101점에 대해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문제는 신청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뒷짐만 진 채 방치해온 문화재청의 한심한 태도다. 문화재청은 ‘가짜’ 가능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동안 누구도 학술적으로 가짜라는 소견을 분명히 밝힌 바 없다. 소장자는 직지와 관련된 인사가 직지의 가치 하락을 우려해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유물의 진위를 심사하는 일 또한 문화재청의 몫이자 의무 아닌가. 문화재청은 소장자의 거듭된 항의로 최근에야 겨우 검증작업을 시작했다지만 언제 끝날지는 불투명하다.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 신속히 문화재로 지정·관리되지 못하면 해외 유출·훼손 등의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았으니 소장자가 외국에 팔기라도 하면 어쩔 텐가. 실제로 주한 독일 대사가 증도가자의 구입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만약 이 증도가자가 세계 최고 금속활자로 공인될 경우 인쇄술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인류사적 사건이다. 그러면 국가를 넘어 세계문화유산급 보물이 될 것도 자명하다. 정부가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 절차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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