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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대통령기록 유출

opinionX 2014. 12. 17. 21:00

검찰이 그제 밤 박관천 경정을 전격 체포해 사법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박 경정은 자신이 작성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처럼 ‘대한민국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라 전체를 흔든’ 사건의 중심 인물이 됐다. 그 죄과가 얼마나 클까. 검찰의 태도를 보면 매우 무거운 것 같다. 그가 지난 2월 청와대 파견근무를 마치고 경찰로 복귀하면서 내부 문건들을 갖고 나온 것을 대통령기록물 무단 유출로 판단한 것을 보면 그렇다.

박 경정의 죄는 ‘정윤회 문건’의 성격에 달려 있다. 청와대가 처음에 그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규정했던 공공기록물이라면 최고 징역 3년에 해당하는 죄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대로 대통령기록물이라면 최고 징역 7년에 해당하는 중죄가 된다. 그런데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과 박 대통령의 언급처럼 ‘찌라시’라면 애매해진다. 지금까지 검찰 조사로는 박 경정은 문건을 언론사나 기업 등에 유포하는 과정에는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죄조차도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유출’했다고 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논란거리다. 유출은 보통 유포의 개념을 동반한다. 이를테면 비밀을 취급하던 사람이 퇴직했다고 해서 비밀이 유출됐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출이란 그것이 누설되거나 유포된 결과를 말한다는 얘기다. 원본이 아닌 사본을 가져나간 것이 유출에 해당하는지도 법적으로는 다툼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보고서 작성 주요 관련자인 박관천 경정이 9일 새벽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출처 : 경향DB)


검찰의 이중잣대도 도마에 오른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과 관련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무혐의 처분, 정문헌 의원은 약식기소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대화록을 공공기록물이라고 주장한 국정원의 논리도 같은 맥락이다. 정상외교 기록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은 이번 청와대 문건 유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대사안인데도 말이다. 대통령기록이 번번이 정치공방의 소재가 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기록이 정쟁의 도구가 되는 역사적 비극의 고리를 언제 끊을 수 있을까. 지난해 ‘계사사화’와 이번 ‘갑오사화’가 대통령기록 게이트의 끝이 될 수 있을까.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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