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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샤오보(劉曉波·61)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중국의 인권운동가로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류샤오보는 복역 중 간암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돼 중국 선양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병세가 악화돼 더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한 채 진통제와 안정제만을 맞고 있는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그는 서방에서 마지막 삶을 보내겠다며 중국당국에 출국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부인 류샤(劉霞)는 2011년부터 가택연금상태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가 병원에서 진료받는 모습이 지난달 29일 올라온 동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류샤오보의 치료를 맡은 랴오닝성 선양의 중국의대 제1병원은 8일 그가 미국과 독일 의료진에게 진찰을 받았다고 밝혔다. 베이징 _ AP연합뉴스
1955년 지린성 창춘에서 태어난 류샤오보는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강단에서 중국 현대문학을 가르쳤다. 촉망받는 작가이자 학자였던 류샤오보는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톈안먼 시위에 참여하며 인생이 바뀌었다.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학자로 체류 중 톈안먼 사태가 나자 귀국한 류샤오보는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나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이후 여러 번의 투옥과 노동교화, 석방을 되풀이하는 생활을 하였고, 반연금 상태에 처한 적도 많았다. 1993년 톈안먼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미국 등으로부터 초청을 받았고 주변에서는 망명을 권유했지만 그는 중국을 떠나지 않았다.
2008년 그는 공산당 일당독재체제 종식을 요구하는 ‘08 헌장’을 발표한 뒤 이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1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어 랴오닝성 진저우 교도소에서 수감돼 복역해왔다.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으나 수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1935년 독일의 카를 폰 오시에츠키와 1991년 미얀마의 아웅 산 수지에 이어 구금 중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세 번째 인물이다. 그가 참석하지 못해 시상식은 빈자리로 진행됐고, 중국은 노벨상위원회가 있는 노르웨이에 ‘내정간섭’ 운운하며 무역보복을 감행했다.
‘여우는 죽을 때 여우 굴이 있던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한다.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주위의 망명권유를 뿌리쳤던 류샤오보는 죽음을 앞둔 순간 중국을 떠나겠다고 한다. 진정 자유가 없는 고향이 고향이겠는가.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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