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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한 무사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보검을 물에 빠트렸다. 무사는 급히 단검을 꺼내 뱃전에 보검을 빠트린 자리를 표시했다. 나중에 와서 건지려 하니 사람들이 비웃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옛날의 법으로 지금의 나라를 다스리려 함은 이와 같은 어리석음이라.”

우리가 흔히 아는 각주구검(刻舟求劍) 고사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리석은 무사의 이야기까지만 알고 그 뒷말을 몰라 진정 이 고사가 뜻한 바는 잘 모릅니다. 개인이 아니라 큰 집단이 갖는 어리석음에 관한 내용인데 말이죠.

이혼 후 6개월간 여성의 재혼을 금지하는 민법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빠가 누구냐 라는, 자식은 오로지 아버지 쪽 소유라는 구시대적 법 조항. 그러다 2005년 양성평등에 위배되며 친자확인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비판 때문에 이 법은 폐지되었습니다. 일본은 300일에서 100일로 줄었을 뿐 여전히 여성의 재혼금지 기간이 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그래서 인권 선진국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지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속담은 널리 보지 못하며 융통성 없이 미련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와 추세를 보지 못하고 지금 당장의 이해만 따지는 수구(守舊)적 태도 역시 다가올 미래 대신 당장의 하나만 아는 이런 근시안일지 모릅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별을 없애고 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소수자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 속속 보이는 지금입니다. 선진 각국은 정치·종교·사회 모든 분야에서 낡은 규정들을 업데이트합니다. 뱃전에 ×표 새긴들 강물과 배를 제 맘대로 고정시킬 수는 없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면서 정작 새 시대를 옛 세상에 담으려 애쓰는 모습이 후대에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요. 건질 수 없는 것을 건지려다 배가 하류(下流)로 떠내려간 사실을 보면서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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