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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만경봉 92호

opinionX 2018. 2. 7. 14:38

10만명 가까운 재일 한국인을 북한으로 실어나른 재일교포 북송 사업은 남북 분단 역사의 아픈 기억 중 하나다. 식민 시절 끌고와 착취하던 재일 한국인들을 전쟁이 끝나자 무책임하게 추방하려던 일본과 공업 노동력이 필요한 북한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시작된 이 사업은 남북 체제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한 정부는 일본에 북송사업을 준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통보를 보내고, 일본적십자센터 폭파미수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북한은 체제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북송 비용을 자신들이 부담했다. 이 와중에 일본은 북한과 공모해 “북한은 낙원”이라는 선전전을 벌였다. 이때 북송에 동원된 배가 만경봉호다.

만경봉은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부근의 낮은 언덕 이름이다. 여기에 오르면 대동강과 주변의 만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높이가 45m에 불과하지만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방문하기를 선망하는 성지다. 만경봉호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 김일성 주석은 1992년 북한 최고 영예인 김일성 훈장을 수여할 정도였다.

만경봉호가 노후화되자 북한은 총련의 성금으로 1992년 ‘만경봉 92호’를 건조했다. 1992년에 만든 만경봉호라는 뜻이다. 이 배는 북한 원산~일본 니가타를 왕복운항하면서 총련계 재일교포들이 북한으로 보내는 돈과 물자를 전달하는 화물선으로 사용되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북한 응원단을 태우고 부산 다대포항에 입항하기도 했다. 다대포항은 아시안게임 내내 북한 응원단을 구경하려는 부산시민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천안함 사건 이후 일본은 물론 한국 입항도 금지되었다.

만경봉 92호가 6일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140명을 태우고 강원도 동해 묵호항에 도착했다. 16년 만에 남한을 찾은 만경봉 92호는 북한 예술단의 숙소로 사용된다. 문재인 정부는 이 배의 남한 입항을 성사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에 균열이 생길까 우려하는 미국과 국내 보수세력의 공세가 거셌기 때문이다. 만경봉 92호의 남한 입항이 북핵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화해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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