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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사람들은 자연환경과 생활양식에 따라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당시엔 세 가지 종류의 모자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수건을 머리에 매는 두건 형태의 것인 책(), 태양을 가리거나 비를 피하기 위해 사용했던 입(笠), 그리고 우리나라 고유의 모자로 고깔 형태인 절풍(折風) 등이다. 절풍 가운데 새 깃털 장식을 단 것을 조우관(鳥羽冠)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고구려인을 구별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자였던 것 같다.

시선(詩仙) 이백은 절풍모를 쓴 고구려인의 춤을 보고 감탄하며 시 ‘고구려’를 지었다. “금 꽃 장식한 절풍모를 쓰고(金花折風帽)/ 백마 타고 유유히 거닐고 있네(白馬小遲回)/ 넓은 소매 너울너울 춤추니(翩翩舞廣袖)/ 해동에서 새가 날아오는 듯하구나(似鳥海東來).” 이백이 시를 지은 때(742년)는 이미 고구려가 망했을 시기다. 고구려인의 기상과 기품을 추억하며 노래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우즈베키스탄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현지시간) ‘실크로드의 심장’으로 불리는 사마르칸트의 아프로시아브 박물관에서 7세기 바르후만왕 즉위식에 참석한 고대 한국인 사절단 모습이 담긴 벽화를 보며 현지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 _ 연합뉴스

중국 대륙의 서쪽 끝, 실크로드의 서역으로 가는 관문이 둔황이다. 이곳에 1000개가 넘는 석굴이 있어 천불동이라고도 불리는 막고굴이 있다. 4세기 중반부터 13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이 석굴에 고구려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막고굴 제335굴 벽화에는 문수보살과 유마거사가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 가운데 조우관을 쓴 두 사람이 보인다. 둔황을 연구하는 중국학자는 새 깃털 두 개가 꽂힌 푸른색 모자를 쓴 이들을 고구려인과 백제인이라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사마르칸트를 방문했다. 관심은 아프로시아브 박물관 내 벽화실이었다. 벽화 속 사신들은 새 깃털을 장식한 모자를 쓰고 있고, 차고 있는 칼도 고구려 것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고구려인들이 사마르칸트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그만큼 양국 교류의 역사가 깊다”고 말했다.

고구려인들은 1500여년 전에 중앙아시아 심장부까지 진출했다. 수천㎞의 길은 악천후와 질병, 도적떼 등으로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반도의 구석에서 복닥거리며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선조들의 호방하고 활달한 기상이 부럽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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