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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통탄할 노릇입니다/ 일곱 시간이 지나도록/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없고/ 지휘도 없으며/ 장비도 없습니다.’ 오해하지 마시라. 세월호 참사 얘기가 아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다룬 창작 판소리 ‘유월소리’(오세혁 작)의 한 대목이다. 서울문화재단의 ‘메모리인(人) 서울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유월소리’는 다음달 3일 서울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명창 안숙선씨의 소리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1995년 6월29일 일어난 삼풍 참사는 대한민국 역사상 6·25전쟁 다음으로 많은 인명피해(사망 502명, 부상 937명, 실종 6명)를 기록한 사고였다. ‘유월소리’의 한 대목에서도 보듯이 세월호 참사(사망·실종 304명)와 판박이다. 건설 당시 무리한 설계변경과 부실시공, 건설 후 용도변경 등이 건물 붕괴의 원인으로 작용한 점이라든가 사전에 붕괴와 관련된 여러 징조가 있었음에도 회사측이 영업을 계속한 점, 건물 붕괴 직전 간부들이 고객을 대피시키지 않은 채 백화점을 빠져나온 점 등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판박이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재발방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서다. 재발방지책은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철저하게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삼풍 경영진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검토되기도 했지만 결국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기소됐다. 소유주에게는 사고와 무관하게 추가로 횡령·뇌물공여죄 등이 적용됐을 뿐이다. 삼풍 참사 이후에 터진 수많은 유사 사고에서도 기업주가 살인죄로 처벌된 예는 찾아볼 수 없다.

대한민국 역대 최악의 참사로 꼽히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출처 : 경향DB)


삼풍 참사 20주기인 오늘 희생자 위령탑이 있는 서울 서초구 ‘양재 시민의 숲’에서 매년 지내던 추모제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표면적 이유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다. 어제까지 182명 사상자(사망 32명)를 낸 메르스 사태도 정부의 무능과 혼선, 허술한 재난대응 시스템이 키운 인재라는 점에서 삼풍 참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삼풍 참사와 판박이 인재인 1년 전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심판론’에 막혀 있고, 20년 전 삼풍 참사를 추모하는 행사 또한 닮은꼴 인재인 메르스 사태로 열지 못하는 현실이 기막히지 않은가.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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