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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학기 말이 돌아왔고, 학생들이 제출한 논문들을 읽었다. 성실하게 자신의 의견을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기술한 학생들이 있는 반면,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자료들을 출처 없이 그대로 짜깁기해서 제출한 학생들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무조건 낙제점을 주는 것이 나의 방침이다.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베껴서 제출하지 말고 한 문단이라도 참고문헌을 읽고 자기 생각을 써서 제출하도록 반복해서 환기하지만, 마감시간이 임박하면 ‘표절의 유혹’에 빠지는 학생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표절 논란에 휩싸인 소설가 신경숙씨는 22일 경향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 건 다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_경향DB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한 주가 이렇게 또 다른 표절에 대한 추억으로 끝나게 돼 씁쓸하다. 작가의 표절에 민감한 우리들이 자기 주변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표절에 대해 무감한 까닭은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가 불거지고, 단독 인터뷰를 통한 작가의 해명까지 나왔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저작권 침해라는 관점에서 표절에 대한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해도, 표절 자체는 작가의 윤리에 속하는 문제라서 신경숙 작가의 태도가 바뀌는 것 이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

게다가 앞서 학생들의 경우가 잘 보여주듯이, 우리 사회의 표절 문제는 개인적인 윤리의식의 부재 못지않게 구조적인 것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가치판단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취업이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인 것이다. 그래서 표절을 제재하려면 부득이하게 학점을 이용해서 불이익을 주는 장치를 고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겨우 윤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자율적인 개인이 윤리적이라는 환상은 여기에서 깨어져 나간다. 윤리는 결코 자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개인과 구조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처럼 불이익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표절을 서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표절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만, 진정으로 표절을 근절하고자 한다면 학생들의 윤리의식 부재만을 질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근본적으로 표절이 옳지 않은 것이라는 윤리적 판단을 학생들이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난제가 있다. 신경숙의 표절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응준은 애초에 신경숙을 비윤리적인 작가로 낙인찍어서 매장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문제제기는 15년간 표절 논란이 지속되었음에도 ‘문단’이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각성에 따른 질문이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신경숙은 인터뷰라도 했지만, 이응준이 이른바 ‘문단’이라고 지목한 곳은 이 물음에 대한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신경숙 표절문제는 당연히 작가가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표절을 묵인해왔던 ‘문단’이 책임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에게 표절이 윤리의 문제라면, 이런 작가의 표절행위를 근절시키지 못한 것은 ‘문단’을 구성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문단’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은 모순적이고 총체적이기 때문에 한두 마디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구조적 문제를 쉽사리 사적인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것이다.

신경숙 표절도 작가 개인의 윤리라는 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그것을 묵인해오고 방조해온 구조적인 ‘문단’의 문제가 있다. 이응준의 고발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흘러가는 분위기는 신경숙 개인의 결단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 착시를 준다. 나는 지금 표절이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신경숙은 억울한 희생자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 문제가 두 가지 층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고, 작가의 윤리와 관련해서 사적인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많이 들리는데, 정작 표절을 묵인해온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많이 들리지 않는다는 우려를 표명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문단권력’이나 ‘문학권력’이라는 단순용법으로 해명하기 어렵다. 문학이 권력을 가진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닐 테다. 다만 그 권력이 특정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 문제이지 않겠는가. 시장의 논리가 ‘문단’의 논리로 내재화되어버린 상황이 이런 표절을 용인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개인의 ‘사과’를 통해 다시는 표절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문학 자체가 시장의 논리로 포섭되어 버린 상황에서 표절의 문제를 오직 개인의 ‘결단’에 맡겨 둔다는 것은 정말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해결책일 것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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