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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의혹에 휩싸인 신경숙 작가를 보면서, 지식재산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역사적으로 한국에는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권 개념이 그다지 없었고, 특허법이 최초로 생긴 것은 1908년 대한제국 시절이었다. 이에 비해 유럽에는 일찍부터 특허법이 있었다. 산업혁명에 주도적 역할을 한 영국에서는 1624년 특허법이 생겼다. 당시 특허법의 취지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발명자의 독점적인 권리를 보장해 발명자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고, 이것이 기술 발달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특허의 예를 들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1775년 영국에 특허로 등록되었으며, 강철 생산의 베세머 공법은 1856년 영국에 등록되었다.

베세머 공법은 강철 생산단가를 종전의 10분의 1 정도로 감소시키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용광로에서 바로 나온 철은 탄소와 같은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하급품인데, 여기에 공기를 불어넣어 불순물을 신속하게 제거해 가격이 비싼 강철을 만드는 것이 베세머 공법이다.

미국이 강대국으로 발전하게 된 중요한 계기는 1800년대 말 철강과 전기의 발달이었다. 미국의 앤드루 카네기는 당시 첨단공법인 베세머 공법을 채택해 단숨에 세계 제일의 철강 생산자로 뛰어올랐다. 카네기가 1875년 베세머 공법 특허의 사용권을 사들여 발전시킨 것이다. 대서양 건너에 있는 특허를 모른 척하고 그냥 쓸 수도 있었는데, 특허법 개념이 역사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남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 것을 ‘표절’(plagiarism)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대체로 둔감한 데 비해 외국에서는 남의 재산을 훔친 것과 비슷하게 간주해 엄하게 처벌한다. 학교에서도 어릴 때부터 표절에 관해 많은 교육을 시키고 있다. 신문에 보도된 정도의 신경숙 작가 글이 만약 미국의 대학교에서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에 들어 있었다면 그 학생은 중대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1995년 12월 12일자 신경숙 작가와 관련된 경향신문의 한 기사 (출처 : 경향DB)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지식재산권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엄격한 국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황우석 박사 논문 사건에서도 학계에서는 국제적인 기준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따라야 한다고 했지만 많은 국민들이 여기에 동조하지 않았고, 여론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이 합세하면서 온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다. 최근 한국 기업 제품들이 외국에 많이 수출되면서 지식재산권 문제를 잘 모르고 있다가 외국 법정에서 거액의 배상금을 판결받은 경우도 몇 건 있다.

이제 한국의 기술 수준은 다른 나라를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났고, 선두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식재산권 제도도 이러한 상황 변화에 맞게 발명과 창작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조중열 | 아주대 IT융합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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