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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과 방송, 그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 중의 하나가 소설가 신경숙씨의 표절 문제이다. 지난 22일 급기야 신씨는 표절을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음으로써 일본 언론에서도 뉴스로 다루기 시작했다. 한국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일본 작가의 작품을 도용한 것이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것이다. 국제적인 망신도 망신이지만, 일본을 여러가지 면에서 비판해 왔던 우리의 입장이 우스워지게 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이 한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을 무대로 한 소설이 메이지·다이쇼·쇼와에 걸쳐 패전에 이르기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일본 문학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일본인이 한국인에 대해 갖는 편견은 유럽인이 유대인에 대해 갖는 편견처럼 오래되지는 않았다.

에도(江戶)시대 이전에는 경의를 갖고 한국을 대했던 시대가 있었다. 에도시대 후기에는 교섭이 끊겼기 때문에 일본인은 한국에 대해 무관심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미국이 일본에 취한 제국주의적 자세와 역할을 일본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했고, 이때부터 한국인에 대한 보호자 의식과 함께 멸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일본은 한국을 강제로 식민통치하고 지배함으로써 양국 관계는 오늘날까지 해결하지 못한 많은 과제들을 그대로 껴안은 채 미궁에 빠져 있다. 일본이 ‘자기 민족을 어떻게 자각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한국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간과하려고만 하는 일본의 자세가 일을 더욱 미궁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처럼 한·일 관계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래 서구 열강을 문명의 규격으로 삼고 근대화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뿐, 한국은 멸시와 차별의 대상을 넘어 이제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정작 한국의 지식인 집단(문단과 학계)은 일본의 대중문학을 마치 한국 문학의 자양강장제인 양 앞다퉈 소개하기에 바빴다. 그것이 한국인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즉 약의 효능만 선전하고 그 부작용이나 후유증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몰상식의 관행을 지켜 왔던 셈이다. 한쪽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든가 독도 문제로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의지로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일본의 대중문화가 주는 단맛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외국 문화를 즐기는데 무슨 법이고 사상이냐고 하겠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일본 문화를 외국 문화로 즐기기에는 양국 간의 관계가 그다지 평이하지 않다. 더구나 이번 신경숙 표절 문제와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36년의 치욕의 역사가 버티고 서 있는데 표절이라는 오명까지 쓴다면 그만큼 우리가 일본에 대해 운신할 폭이 줄어드는 것이다.

2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 공동주최로 <신경숙 작가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토론은 이동연 교수 사회로 이명원, 오창은 교수가 발제하고 심보선 시인, 정원옥 문화과학 편집위원, 정은경 원광대 문창과 교수가 지정토론자로 나섰다. (출처 : 경향DB)


한국 문학은 남의 문학을 흉내 내서는 안 되겠지만, 특히 일본 문학을 다룰 때는 우리 고대 선조들의 넋에 먹칠하는 일이 되지 않는지부터 따져 봐야겠다. 옛 백제의 사신 아직기(阿直岐)와 왕인(王仁) 박사가 아니었다면 그들에게 ‘가나’라는 문자가 가당키나 했겠는가. 따지고 보면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도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도 그 서자에 불과한 것을 왜 정작 적자인 우리들은 그들의 독문(毒文)에 감염되고만 있는 것인지 곰곰이 돌아볼 시기이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 문학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일본 소설이나 시 또는 하이쿠(俳句) 등을 번역해 왔다. 단순히 문장이라든가 표면적인 이해만을 갖고 일본 문학을 대해 온 우리 문학계의 풍토가 이번에 불거져 나온 표절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현희 | 일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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