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여적]상상된 경계들

opinionX 2018. 9. 10. 14:20

중국으로 가던 연암 박지원이 압록강을 건너는 배 안에서 통역관 홍명복에게 묻는다. “자네, 도(道)를 아는가.” 홍명복이 머뭇거리자, 연암은 도는 강물과 언덕의 ‘경계’에 있다며 이렇게 설명한다. “점과 면의 중간인 선(線)을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빛이 있고 없는 경계(有光無光之際)’로 정의한다네. 또 &lt;원각경&gt;에서는 진리를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不卽不離)’ 경계에서 찾는다네.” 연암이 왜 수학과 불교를 인용하며 ‘경계 이론’을 편 것일까. 그때 연암은 조선과 청의 경계에서 조선 사회에 만연한 북벌과 북학의 이항대립을 고민했던 것이다. 연암에게 경계는 생성과 창작의 지점이었고, <열하일기>는 그 결과물이었다.

경계는 이것과 저것의 사이이자 중간이다. 이분법론자는 경계를 중시한다. 그런데 연암의 말처럼 명확히 그을 수 없는 경계가 존재한다. 국경이라는 경계조차 선(線)이 아니다. 남과 북에는 비무장의 ‘지대’로, 북·중 간에는 압록·두만강의 공유수면으로 그어졌다. 경계를 구분이 아닌, 이쪽과 저쪽을 아우르는 공통 지대로 인식할 때 변화가 나타난다. 예컨대 국경 대신 변경을 주목하면 역사와 국제질서가 다르게 보인다. 역사학자 김한규가 그랬다. 그는 &lt;요동사&gt;에서 만주를 중국이나 한국의 역사가 아닌 ‘제3의 역사공동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동북공정이 진행되던 때여서 그는 한·중 양측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역사전쟁’의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경계는 오래전에 무뎌졌다. 탈장르, 융복합, 학제 간 연구 등 경계를 넘는 활동이 활발하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시인 함민복의 말처럼 경계에서 문화예술이 피어나고 있다. 세계화와 함께 국가적·지정학적 경계도 희미해지고 있다. 반면 난민, 혐오, 차별 등 인종·세대·남녀·감정의 경계는 심화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베네딕트 앤더슨이 민족주의를 ‘상상된 공동체’라고 규정했듯이 세상의 ‘경계들’도 상상된 허구일지 모른다. 2018 광주비엔날레가 ‘상상된 경계들(ImaginedBorders)’을 주제로 지난주 개막했다.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세계 각국 미술인들의 작업이 ‘우리 안의 경계들’을 얼마나 허물어뜨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운찬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