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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 독립’의 헌법상 근거는 제103조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사법권 독립’의 핵심은 ‘법원의 독립’이 아니라 재판하는 개별 ‘법관의 독립’이다. 그러면 헌법이 법관들에게 이러한 헌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해준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 제27조가 국민 기본권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누구의 지시나 명령도 받지 말고 오직 헌법,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함으로써 억울한 상황에 처한 국민들이 공정하고 독립된 재판을 통해 그 권리를 보장받게 하겠다는 취지다. 따라서 ‘법관의 독립’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사법권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우리 헌법은 또 삼권분립원리를 기본원리의 하나로 삼고 있다. 국가권력을 입법권·사법권·행정권으로 분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 세 권력 상호 간에 견제장치를 둬 견제를 통한 권력 간 ‘균형’을 이뤄 집중된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라는 것이 삼권분립원리의 취지다.

사법권은 무엇을 통해 입법부나 행정부를 견제할까? 기본적으로 재판을 통해서다. 사법적극주의적인 판결을 통해 이들 공권력을 견제하고 위헌·위법한 공권력 오·남용의 횡포로부터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공정한 재판을 통해 보호하라는 것이 삼권분립원리가 사법부에 부여한 헌법적 책무다.

검찰 수사를 통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하의 법원행정처 사법농단 의혹은 그 내용이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그 행태가 지극히 위헌적이라 문제가 심각하다.

첫째, ‘법관의 독립’을 헌법이 규정하고 있음에도 개별 법관들을 사찰하고 재판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사항들을 중심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사법상층부에 의한 ‘법관의 독립’ 침해다. 둘째, 국민들의 피와 눈물이 밴 사건들과 관련해 공정한 재판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려 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상고법원 설치와 관련한 협조를 얻기 위해 그 사건 재판을 ‘희생 제물’로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에 갖다 바친 의혹을 사고 있다.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으며, 삼권분립원리가 사법부에 부여한 헌법적 책무를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다. 일제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 양승태 대법원장하에서 두 명의 법원행정처장들이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부름을 받고 이 사건 재판 진행을 논의하기 위해 비밀리에 삼청동 공관으로 갔다는 언론 보도가 한 예다.

법원행정의 제2인자이자 대법관 중 한 명인 법원행정처장이 진행 중인 재판과 관련해 청와대 고위 인사를 비밀리에 만났다는 것 자체가 삼권분립원리를 기본원리로 하는 현행 헌법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일제 강제징용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배상책임을 인정받은 일본 전범기업들이 대법원에 재상고한 후 6년째 판결이 나지 않고 있다. 재상고 후 곧 기각판결이 예상되던 사건이었다. 그동안 아홉 분의 강제징용 소송당사자 분들 중 일곱 분이 돌아가셨다. 누가 보더라도 헌법이 보장한 공정한 재판이 결코 아니다.

많은 국민들은 지금 현재의 법원 태도에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법원은 사법농단 진상규명을 위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 중 90%를 기각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를 약속했던 6월15일 담화문의 일부가 불현듯 떠오른다. 법원 내부에는 “사법부에 대한 무분별한 수사로 사법부의 독립과 신뢰가 또다시 침해되는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고 고백했던 부분 말이다. ‘사법권 독립’의 핵심인 ‘법관의 독립’을 유린한 의혹을 받는 당사자들에 대한 영장이 사법권 독립을 이유로 거부되는 이상한 상황이다. 진상규명에 대한 법원 일부의 비협조적인 태도야말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또다시 추락시키고 있음을 법원은 알아야 한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사법권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해왔던 법원이 사법행정 등에서 위임자인 국민의 뜻에 거스르는 위헌적인 권한 오·남용을 했다면 진상규명에 협조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마땅하다. 법원개혁에 대한 논의도 법원 내의 ‘셀프개혁’ 논의로 미봉하려 할 것이 아니라 사법권을 법원에 위임해 준 국민들의 뜻을 폭넓게 물어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헌법을 다시 살피면 해결책이 보인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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