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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슈퍼우먼방지법

opinionX 2017. 1. 25. 10:47

남녀 불평등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자녀를 둔 가정의 출근 전 풍경일 터이다. 한 직장여성은 출근 전 1시간 동안 15가지의 일을 한다(<기획된 가족>, 조주은). 본인과 남편, 자녀의 출근 및 통학 준비 때문인데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남편과 자녀 깨우기만 해도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겨 일하다보면 정작 자신은 밥먹을 시간도 없어 굶고 출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반면 남편은 세수하고 차려준 밥을 먹고 옷을 입는 3~4가지가량의 ‘자기 일’만 하면 된다. 다 같은 직장인이지만 가부장적 성역할 규범은 이처럼 가사와 육아에서의 여성 차별을 강요한다. 남편이 거들어줄 때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도와주는 것’이지 ‘남편의 의무’는 아니다.

직장 내 차별은 더욱 심각하다. 승진, 보직 차별은 물론 육아 문제로 경력단절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로 인해 2014년 기준 기업 임원의 비율이 남성의 6분의 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였다.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도 몇 년째 최하위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직장여성들은 유능한 직원과 자상한 엄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조금만 잘못하면 직장에서는 무능한 직원으로 찍히고, 자녀에게는 ‘얼굴 없는 엄마’로 그려지고 만다.

대권출마를 선언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첫 대선공약으로 출산휴가 120일, 육아휴직 급여 통상임금 40%에서 60%로 늘리겠다는 '슈퍼우먼 방지법'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슈퍼우먼’이란 말은 이처럼 일과 양육, 가사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여성을 원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졌다. 슈퍼우먼이 되려고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눈질환, 두통, 불안감 등의 증상에 시달리는 것을 뜻하는 ‘슈퍼우먼 증후군’도 파생했다. 둘 다 직장여성들에 대한 착취 수준의 차별을 고발하는 용어들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맞벌이하며 맞돌봄은 없이 고생하는 직장여성들을 위해 ‘슈퍼우먼방지법’을 제안했다. 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90일에서 120일로 확대하고 배우자 출산휴가를 유급 3일에서 39일로 늘리는 내용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육아휴직 기간을 최대 3년으로 늘리는 법안을 내놓았다. 두 법안은 파격적 내용을 담고 있어 통과를 낙관할 수 없다. 문제는 통과된다 해도 엄청난 간극의 불평등을 바로잡기 어렵다는 점이다. 갈 길이 아주 멀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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