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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인천 장발장

opinionX 2019. 12. 18. 10:46

장발장은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이름이다. 빵 한 덩이를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 사회에 나와 또다시 절도한 장발장이 무조건적인 용서와 신뢰를 보내준 미리엘 주교에게 감화받아 본인과 주변의 삶을 변화시킨 얘기는 초등학생들도 알 만큼 유명하다. 한데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의 <레 미제라블>에서 불쌍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발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작가는 등장인물 모두를 불쌍하게 여겼다고 한다.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팡틴, 부모 없이 장발장 손에 맡겨진 코제트, 혁명에 뛰어든 마리우스, 코제트를 인신매매하려는 여인숙 부부, 장발장을 추격하는 형사 자베르 등 고통받고, 고통을 주는 사람 모두가 작가에겐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위고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1848년 파리에서 국회의원으로 뽑힌 뒤 빈곤퇴치에 앞장섰다. 1862년 예순의 나이에 출간한 <레 미제라블>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겼다.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이 책에서 인간의 불행한 운명을 물리치고, 노예제도를 금지하고, 가난을 몰아내고, 무지한 자를 깨우치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어둠을 밝히고, 증오를 증오하려 했다네… 내가 레 미제라블을 쓴 이유라네”라고 밝혔다.

최근 ‘인천 장발장’이란 용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포털사이트 등의 인기검색어에 떠올랐다. 지난 10일 인천의 한 마트에서 배고픔에 못 이겨 우유, 사과 등 1만원가량의 식료품을 훔친 기초생활수급 30대 아버지와 10대 아들 얘기다. 딱한 사연에 선처를 부탁한 마트 주인, 이들에게 국밥을 대접한 경찰, 익명으로 성금과 물품을 전달한 시민들의 훈훈한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있다. 그제는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를 거론하며 개인의 온정에만 기대지 말고, 맞춤형 고용지원정책을 펼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장발장은 비참한 현실이 아닌, 변화의 아이콘이다. 고통받는 서로를 측은하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인간과 사회 변화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연말 춥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넘는 시민의 훈훈한 연대. ‘우리 사회 장발장’의 울림이 크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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