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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오대학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눈을 뜬 것은 1991년 11월28일 김학순 할머니의 NHK TV 인터뷰를 접하면서부터다. 그의 첫 작업은 방위청 도서관, 외교사료관 등을 돌며 위안부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그 성과가 <종군위안부 자료집>(1992)이다. 그는 <종군위안부> <공동연구-일본군 위안부> 등을 잇따라 펴냈다. 그의 연구로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 땅을 잃었다. 쑤즈량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1993년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상하이, 난징 등 일본군 점령지를 돌며 피해자를 찾아 구술을 정리했다. 상하이에서만 172곳의 위안소를 찾아 학계에 발표했다. <일본군 성노예> 등 여러 권의 연구서와 자료집을 펴낸 그는 난징 리지샹위안소진열관 초대 관장을 지냈다. 현재는 중국 위안부문제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한국에는 요시미나 쑤즈량 같은 일본군 위안부 연구 권위자가 없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나온 뒤에도 한국 학계는 조용했다. 일본군 위안부 최대 피해국에서 정부와 역사학자가 수수방관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정대협)나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여성·시민단체의 몫이었다. 연구는 여성학·법학·문학 분야에서 실체가 아닌 담론 중심으로 이뤄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발굴한 문서·자료는 거의 없다. 그러니 광주 나눔의 집 역사관에 전시된 사진·도면·서적이 대부분 일본·중국 자료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난해 8월과 9월, ‘위안부’ 국책연구소가 나란히 문을 열었다. 여성가족부 산하의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와 동북아역사재단의 일본군위안부연구센터가 그것이다. 여가부 연구소는 조직의 독립성 논란이 일면서 초대 소장이 사임하는 등 파행하고 있다. 반면 동북아재단 연구센터는 안착하는 분위기다. 한국사·중국사·일본정치·국제법 전공의 연구원을 갖춘 연구센터는 민관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허브를 지향한다고 한다. 센터는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연구서를 낸 데 이어 최근 <일본군 ‘위안부’ 자료 목록집>(4권)을 냈다. 이제야 일본군 위안부 연구가 첫발을 떼는 것 같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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