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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사진 신부 천연희의 이야기>(일조각·2018)를 읽다 놀라고 또 부끄러웠다. 1915년 19세의 나이에 혈혈단신 하와이로 이주하여 불굴의 생애를 살아낸 천연희라는 여성은, 사진 신부와 1910년대 조선 여성들에 대한 선입견을 깨주었다. 그가 얼굴도 모르는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와 결혼하기로 한 것은 가난에 떠밀린 탓이 아니었다. 그는 정치적 동기로 하와이행을 결심했다. 일제의 억압과 차별 때문에 이 땅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 생각했고, 자유와 민주주의 나라에서 나래를 펴고 싶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의 학교 친구들도 너도나도 태평양을 건너는 자유·평등의 모험을 꿈꾸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그런 여성 청년들이 4년 뒤의 치열했던 진주 3·1운동의 주역 아니었을까?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스틸 이미지

그처럼 일제에 대한 저항은 단지 ‘민족해방’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인간됨과 자유의지의 소산이었다. 성별이나 나이를 초월했다. 유관순을 평범하면서도 타협을 모르는 순수한 인간으로 그린 영화 <항거>의 엔딩크레디트는 유관순 사후의 사실이다. 17세 여학생 유관순을 고문하여 죽이는 데 가담한 정춘양이라는 이름의 총독부 하급관리는 해방 이후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반민특위가 해체돼버렸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비난한 바로 그 반민특위다. 1949년 당시 반민특위에 대한 비난과 공격에 나섰던 극우 친일파의 책략은 나 원내대표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들도 반민특위가 ‘민족을 분열시키는 좌파’라는 선동술을 폈다. 반민특위에 대한 공격과 그 해체가 어떤 역사적 맥락을 갖는지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의 나 원내대표에 대한 국회의원 사퇴 요구에 깊이 공감한다.

친일은 왜 죄악이며, 친일파는 왜 철저히 단죄했어야 하는가? 친일파가 사리사욕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식의 언표는 불충분하며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친일’이라는 개념은 일제의 인종주의와 군국주의에 동조하고 그 하청을 받아 저지른 반민주, 반인권, 반평화, 반여성 범죄 행위 사실에 대한 대유다.

그리고 2010년대의 한국에서 ‘친일청산’은 어떤 실질적인 의미가 있나? 과거의 일제 잔재나 친일파가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이 땅에 여전히 힘겨운 탈식민의 과제가 있고 일본의 재무장 기도와 우익의 발호가 한반도의 평화·안보에 잠재 위협이기 때문이다. 또한 친일청산은 대한민국의 왜곡된 발전사를 환기하고 매판적 기득권 구조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

그래서 누리꾼들이 퍼뜨리고 민주평화당이 애용하는 ‘토착 왜구’는 흥미롭고 함축적인 조어다. 이 말은 외세와 분단상황에 기생하는 세력이 약탈적 부를 누리면서 반민주·반인권·반평화의 행태를 멈추지 않는 것을 표상하는 데 적합한 면이 있다.

그러나 뭔가가 부족하다. 나는 이 부족감을 올해 정부가 많은 예산을 들여 벌인 대규모 독립운동 선양과 ‘대한민국 정통성 다시 세우기’ 사업에서도 느꼈다.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친일청산이든, 임시정부의 정통성이든 실질적 민주·평등과 연관되지 않으면 공허해진다는 점을 보태고 싶다. 청년들과 서민 대중은 대규모 3·1운동 기념행사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만약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여전히 견고하다면 극우·수구가 저렇게 기승을 부릴까? 원내대표라는 자가 국회연설에서 철 지난 종북 타령을 늘어놓고 천한 역사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낼까? 그들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화해·평화의 길이 순탄치 않아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 이념과 혐오의 정치를 재개하며 대중의 뜻을 호도·횡령하려 한다.

이념정치에 중독됐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집권 초부터 몰락의 시점까지 쉬지 않고 ‘역사전쟁’을 벌였던 사실을 상기한다. 그들은 아무에게나 종북 좌파 프레임을 씌우고 비현실적인 북한 붕괴론을 신앙화했다. 뉴라이트를 앞세워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고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했다. 물론 민심은 드라이아이스처럼 냉정했다. 그들의 역사관이 사실도 진실도 담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나 민생과 연관 없는 이념적 역사 논란이나 정통론의 추구가 허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이한 국정운영이나 개선되지 않은 양극화야말로, 촛불이 진압해놓은 수구·냉전·극우 정치가 재생하는 거름밭이다. 시민사회는 ‘토착 왜구’의 재흥을 차단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각오를 다지는 듯하다. 3월23일에는 ‘자유한국당 해체’와 ‘사회 대개혁’을 모토로 한 범국민 촛불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정부·여당도 각오를 완전히 새롭게 하여 기득권 구조의 전면 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매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민심은 집권세력을 먼저 심판할 것이다. 그 조짐이 현재 민주당의 지지율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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