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여적]장진호 전투

opinionX 2017. 6. 30. 10:55

졌지만 승리했다고 평가받는 전투도 있다. 6·25 때의 장진호 전투가 그렇다. 1950년 압록강까지 쫓긴 북한의 임시수도 강계를 미군이 점령하려다 오히려 중공군에 포위돼 전멸할 뻔한 전투다. 미군 전사자 2500명, 실종 219명의 피해가 발생해 “진주만 피습 이후 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란 혹평을 받았다. 그해 타임지 표지에 “가장 참혹한 전투”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투로 인해 중공군 12만명의 남하가 2주간 늦어졌고 그사이 흥남철수가 이뤄졌다. 미군과 한국군은 200척 가까운 배를 동원해 군과 피란민 각 10만명의 남하작전을 폈다.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무기와 화물을 바다에 버리고 정원 60명인 배에 200배 넘는 1만4000명의 피란민을 태운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화는 눈물겹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방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미 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스테판 옴스테드 예비역 해병대 중장(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해병1사단이 중국군 포위를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전투로, 중국군의 진출을 지연시켜 피란민 10여만명의 흥남철수가 가능해졌다. 콴티코 _ AP연합뉴스

흥남철수를 소재로 한 영화 <국제시장>은 전쟁은 참혹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인도주의는 아름답다는 걸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빅토리호를 타고 남한으로 탈출했다. 장진호 전투에 대해 중공군의 ‘군사적 승리’이자 미군의 ‘전술적 승리’로 표현하는 이유다.

물론 6·25 때 빛나는 승리의 전투들도 많다. 인천상륙작전, 백마고지전투가 그렇다. 282고지, 지평리, 단장의 능선 전투는 ‘3대 대첩’으로 불린다. 채명신 장군처럼 단 한 번도 패전하지 않은 전쟁 영웅도 탄생했다. 하지만 참혹한 패전이 훨씬 더 많다. 강원도 현리 전투에서는 최고지휘관 유재흥 장군이 중공군에 포위당하자 비겁하게 부하들을 버리고 혼자 도주해 군단이 궤멸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유 장군은 태극무궁훈장을 받고, 국방부 장관·석유공사사장을 지낸 뒤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40여년 만에 북에서 귀환한 국군포로 고 조창호 중위가 바로 유 장군이 이끌던 부대 소속이었다.

한·미 정상회담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이 버지니아주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기념비에 헌화하고 당시 참전용사들을 만나 90도로 허리 굽혀 위로와 감사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장진호 전투가 없었다면 내 삶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은 누구도 6·25와 분단 역사의 소용돌이를 비켜갈 수 없다.

조호연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