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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된 딸(박근혜)은 첫 여름휴가를 그 섬으로 떠났다. 2013년 7월30일 페이스북에 휴가 사진 5장이 공개됐다. 그중 기묘한 사진 하나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인적 없는 바닷가에서 나뭇가지로 다섯 글자를 모래 위에 쓰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저도의 추억.’ 38년 전 대통령 아버지(박정희)가 이 섬에서 읊은 시의 제목이다. 대통령 첫해 여름휴가지에서 아버지를 소환하며 ‘추억 정치’를 극적으로 연출한 그 사진들은 최순실이 지휘·감독·선별해 전파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7월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백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라고 쓰고 있다. 출처 : 박근혜 페이스북
대통령 아버지는 풍광이 수려한 남녘의 작은 섬(면적 43만4181㎡)을 사랑했다. 1954년부터 대통령의 여름 휴양지로 이용되던 저도를 1967년 처음 방문한 박정희는 휴가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그러다 1972년 아예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했다. 홀로 아름다운 섬의 몸에는 권력의 장치들이 새겨졌다. ‘바다의 청와대’란 뜻의 청해대로 이름 붙여진 별장이 증개축되고 9홀 규모의 골프장도 조성됐다. 은빛 찬란한 섬진강 모래를 운송해 202m의 인공 백사장을 만들었다. 딸 대통령이 ‘저도의 추억’을 새긴 바로 그곳이다. 권력의 공간으로 재구성된 그 섬에서 박정희 가족은 여름마다 ‘추억’을 쌓았다.
부녀 대통령의 추억이 서린 그 섬은 어떤 이들에게는 아픈 추억으로 되새겨진다. 섬 밖으로 밀려난 주민들이다. 저도는 민간인 출입이 원천 금지됐고, 천혜의 어장인 저도 해안에서 고기잡이도 금지됐다. “이제 쫌 돌리도라.” 저도가 속한 장목면 주민들은 30년 넘게 ‘저도 반환’ 운동을 벌여왔다. 장목면 출신인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취임하자마자 ‘청해대’를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했다. 하지만 관리권은 여전히 국방부가 보유했고, 이후에도 대통령들의 휴가지로 계속 이용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대통령 휴양지인 경남 거제 저도의 산책로에서 남해를 바라보고 있다. 저도는 이날 47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공개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저도를 찾았다. 2017년 대선 당시 공약했던 ‘저도 개방 및 반환’을 공식화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과 17개 시·도에서 온 100여명의 탐방단은 47년 만에 열린 ‘금역의 섬’을 밟았다. 앞서 거제시와 행정안전부·국방부가 참여한 ‘저도상생협의체’는 오는 9월부터 1년간 저도를 시범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상시적이고 완전한 개방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빼앗긴 섬과 바다를 “이제는 쫌 돌리도라”.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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