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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국방부는 29일 일부 관련 보도에 대해 “현재 ‘청해부대의 파병’과 같은 보도가 있었는데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우리 선박의 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호르무즈 파병은 지난 24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이후 급물살을 탔다. 청와대는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이 자리에서 파병 요청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19일 워싱턴에서 각국 외교관들을 불러 호르무즈해협의 ‘민간선박 공동호위 연합체’ 결성에 참여하도록 설명회를 열었다. 이 호위 연합체에 청해부대를 파견하자는 방안이 파병안의 개요다. 아덴만에서 한국 선박 호송 등 임무를 수행하는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호르무즈까지 확대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전구역 확대는 신규 파병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동의 없이도 가능하다. 호르무즈해협은 한국으로 향하는 원유의 70~80%가 통과하는 길목인 만큼 이 지역의 안정은 한국의 경제적 이해에도 직결돼 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이 24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해리 해리스 주미대사(왼쪽)와 함께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파병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호르무즈 긴장, 즉 미·이란 간 갈등이 왜 벌어졌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이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공동으로 타결한 ‘이란 핵협정’에서 지난해 5월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봉쇄하면서 긴장을 키웠고, 지난 5~6월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유조선 피격사건이 잇따르자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며 연합군 결성에 나선 것이다.

요컨대 호르무즈 긴장은 미국의 일방통행식 합의 파기에서 촉발됐다. 게다가 유조선 피격사건은 경위가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연합군 구성과 활동은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만 격화시킬 뿐이다. 한국의 파병은 명분도 없는 데다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다. 이란과의 관계파탄은 물론 중동 일원의 친이란 국가들과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최우방을 자처하는 일본조차 파병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동맹국이자 한반도 평화를 좌우할 힘을 가진 미국의 요청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는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면 다른 지역의 분쟁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은 그 원칙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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