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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에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가 확산되고 있다. 전 유도선수 신모씨가 고교 재학 중이던 2011년부터 졸업 후인 2015년까지 당시 코치 손모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14일 폭로했다. 신씨는 손씨를 고소했으나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그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조재범 성폭행’ 고발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언제까지 피해 당사자들의 용기에만 의존해야 하나. 그들이 인생을 걸고 세상에 나설 때까지 법과 제도와 시스템은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젊은빙상인연대와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100인의여성체육인,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8개 체육·시민단체들이 1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조재범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신씨에 따르면, 손씨는 신씨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산부인과 진료를 받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성관계 사실을 부인하라’며 돈을 주려 했다고 한다. 금품으로 회유하려는 데 분노한 신씨는 지난해 3월 손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피해 사실을 아는 유도계 인사들이 증언을 거절하는 바람에 수사는 답보에 빠졌다. 대한유도회는 사건이 공론화된 후에야 손씨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도회 측은 “신·손씨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아 징계를 논의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해명이 군색하다. 신씨는 지난해 말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관련 글을 올린 바 있다. 손씨는 유도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가족 중에도 유도계 인사가 있다고 한다. 그는 한겨레 인터뷰에선 ‘과거 연인관계’였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연이은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증언은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화려한 모습 속에 감춰져왔던 부끄러운 모습”이라며 “드러난 일뿐 아니라 개연성이 있는 범위까지 철저한 조사와 수사,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본다. 신씨 사건에서도 드러나듯 체육계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데는 ‘침묵의 카르텔’ 탓이 크다. 가해자가 관련된 개별 경기단체 차원에서는 제대로 된 조사나 징계가 이뤄지기 어렵다. 강력한 조사권을 가진 독립기구를 만들어 스포츠계의 썩은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체육계 성폭력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조사할 독립기구를 설치하는 일을 서두르기 바란다. 여성 운동선수들의 용기있는 증언이 한국 스포츠의 낡은 악습을 뿌리 뽑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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