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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터져 나오는 양진호씨의 범죄 행위를 보면서 처음에는 그가 ‘특별히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사람들은 이 정권에서조차(?) 그의 “뒤를 봐주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며칠 전에 택시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관련 뉴스가 나오자 기사의 ‘승객 열전(列傳)’이 시작되었다. 기사의 경험에 의하면, 양진호씨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것이다. 최근 어느 대기업의 임원은 차체가 흔들리도록 동승한 부하 직원을 마구 폭행하다가 만류하는 기사까지 구타했다고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양진호씨는 심각한 가정폭력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을 보면 ‘왜?’ 혹은 ‘왜 저렇게까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폭력 남편들은 죽도록 아내를 때리는가? 왜 그들의 형량은 그토록 적은가? 개정 논의 중에 있지만,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르면 감형된다. 피살자가 여성일 경우, 범인의 60~80%는 파트너(배우자, 애인 등)이다.

나만 그런가?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사건들. 폭력과 관련한 책을 읽다가 ‘정답’을 발견했다. “가해자들은 그럴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다(They do because They can).” 이렇게 자명한 이치 앞에서 성악설, 성선설, 인과론, 구조적 시각 등등이 무슨 소용 있으랴. 간단하다.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그럴 수 없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17세기 서구에서 자연과학의 발전은 근대 이후 인간과 사회 현상에까지 과잉 적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인과론이다.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논리다. 문제는, 그 원인이 형성된 원인도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는 것이다. 베냐민은 ‘원인의 원인’이 5000개쯤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개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하지만, 해결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즉 사회적 의지가 없다면 원인이 밝혀져도 소용이 없다.

양진호씨의 모든 행각은 단지, 그렇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진호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이나 개인에 대한 분석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양진호씨 같은 사람을 허용하는 곳이고, 그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확신범이다.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혹은 “고쳐봤자 제2, 제3의 같은 인물이 나올 것”이라는 논리가 있다. 언뜻 들으면 구조를 지적하는 것 같지만, 사안에 따라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사회적 대응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선택한다.’ 사기도 살인도 어차피 근절되지 않을 범죄지만, 그렇다고 방치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성매매는 필요악이라며 필요를 강조하고, 사회적 약자가 당하는 범죄는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다.

박정희 시대의 구호였던 “하면 된다”는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휴머니즘에서 나왔지만, “하면 된다”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사실 권력의 의지로 불가능한 일은 없다. 여기서 권력의 의지는 권력‘자’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그 구성원이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가능한 일은 있어도 불가피한 일은 없다.

국제관계학은 대표적인 다학제(多學制) 연구이다. 전통적인 정치학부터 경영, 전산, 물리, 심리, 지리학, 지역학까지 거의 모든 문리(文理)를 망라한다. 이 많은 지식이 왜 필요할까. 전쟁의 원인, 원리를 분석하고 예측하기 위함일 것이다. 전쟁의 원인은 너무나 복잡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그 엄청난 비극을 겪으면서 왜 전쟁을 끝내지 못할까. 평화운동가들의 답은 간단하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증외상센터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존 관행을 뚫고 나가는 모습이 필요한데, 한 발자국도 못 나가는 것 같다. 솔직히 드는 생각은 한국 사회가 개선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냉소나 절망이 아니라 매우 정확한 진단이다. 원하지 않아서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절박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 좌절되면, ‘아,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구나…’라는 절망감이, 이성적 판단이 되는 법이다. 양진호씨 같은 사람이 원하는 것은 너무도 손쉽게 실현된다. 반면, 중증외상센터처럼 ‘간단한’ 행정 조치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힘없는 이들의 생명을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토록 개선이 힘들다면, 이곳은 어떤 사회인가.

어떤 문제든 인간이 저지른 것이고, 그것은 인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 양진호씨 사건은 그가 평범한 인물이지만,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최소 규범의 몰락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법이 없어서, 공권력이 부족해서, 자원이 없어서 발생하는 인간사는 없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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