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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다섯 살 때 제 형들을 따라 처음 공부방에 왔다. 작고 마른 아이는 낯을 가려 자꾸 형들의 뒤꽁무니에 숨었다. 그러면서도 몇 살이냐고 물으면 고개를 쏙 빼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다섯 살인데 더하기도 할 줄 알아요, 나 혼자 알았어요. 다섯 살에 덧셈 원리를 깨우친 영민한 아이는 1학년부터 공부방에 올 수 있다는 걸 안 뒤로는 나이를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이를 물으면 으레 덧셈을 할 수 있다거나 한글을 안다거나 달리기를 잘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꿋꿋하게 형들과 함께 공부방에 나왔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아이는 몇 달만 지나면 1학년이 된다. 아이한테 곧 학교에 가겠네 했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아요. 그런데 나는 벌써 곱셈도 할 줄 알아요.”

그 말에 함께 놀던 아이들이 웃자 그 아이는 보란 듯이 구구단을 외워 보였다. 큰 눈을 끔벅거리면서 열심히 구구단을 외는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을 증명하느라 애써야 하는 걸까.

아이의 아빠는 파키스탄에서 왔다. 형제 넷 중 아이가 가장 많이 아빠를 닮았다. 그러니 사람들은 아이를 보면 아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머나먼 나라를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이 파주의 한 동네에서 태어났으며, 당신들이 배운 것을 배우고, 본 것을 보았으며, 생각한 것을 생각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자신이 이방인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순간들, 아이는 구구단을 외듯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이는 점심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돕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아이가 싱크대 앞에 의자를 놓고 서자 한 살 많은 형이 도와주겠다면서 얼른 그 옆에 붙어 섰다. 둘 다 설거지는 처음 하는 거라면서도 곧잘 했다. 형은 때때로 동생에게 세제를 더 묻혀야 한다, 접시 밑바닥도 닦아야 한다고 일러줬다. 동생이 잘 따라 하자 형이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설거지 영웅이 될 것 같아. 정말 잘한다. 그지?”

이날 형제 영웅들은 정말 설거지를 훌륭하게 끝냈다. 형제는 용감했다. 앞으로도 용감할 것이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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