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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해상시위

opinionX 2014. 11. 27. 21:00

등에 작살이 꽂힌 밍크고래가 피를 흘리며 남극해 위로 떠오른다. 포경선과 고래와 거친 파도 사이의 작은 고무보트에서 30대 남자가 고래 등에 올라타 위태롭게 서 있다. 포경선에서 거센 물대포가 뿜어져나와 그를 사정없이 강타한다. 2005년 12월24일 고래보호 캠페인에 나선 그린피스가 촬영한 이 해상시위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린피스 대원이 고래를 살리려고 사투하는 모습은 언론과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 중계됐다. ‘과학’으로 위장한 일본의 야만적 포경이 만천하에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해상시위는 핵실험, 고래잡이, 유전개발, 해양투기, 불법조업 등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파괴를 고발하는 수단으로 환경단체가 즐겨 사용해온 방식이다. 막대한 비용과 고난도의 작전, 심지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캠페인이지만 그만큼 효과 또한 크기 때문일 듯하다. 바다 환경이 취약하고 보호가 절실한 점도 해상시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국내에서도 탈핵이나 해양투기, 불법조업, 해안이나 하안 개발 등을 이슈로 환경단체가 해상시위를 벌인 바 있다.

신고리 원전 앞바다 시위 그린피스 활동가가 29일 오전 부산 기장군 신고리원자력발전소 1·2호기 인근 바다에서 ‘위조된 안전’이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을 들고 원전에 불량 부품을 쓰다 가동이 중단된 것을 규탄하는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_ 그린피스 제공


그제는 인천 옹진군 서해5도 어민들이 해상시위에 나섰다. 대청도로 모여든 100여척의 배가 경인 아라뱃길을 따라 여의도로 상경시위를 벌이겠다며 출항했다가 높은 파도와 해양본부의 만류로 한시간반 만에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들을 해상시위로 내몬 것도 결국 불법조업이다. 중국 어선 700~1000척이 거대한 선단을 이뤄 국내 어장에 들어와 치어까지 싹쓸이하고 어구와 어망을 파손하는 바람에 생업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해양본부는 해상에서의 어떤 시위도 불법이라며 어민들을 막았지만 현행 집시법에 해상시위가 불법이라는 명문 규정은 없다. 해상이라는 장소의 위험성과 선박이라는 수단의 특수성 등을 감안해 엄격히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육상시위와 마찬가지로 해상시위도 국민 기본권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보호돼야 한다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된다. 중국 어선 불법조업 문제는 해양환경과 어민 생존권뿐 아니라 영토 보호와도 관련된 문제다. 새 간판을 단 해양본부의 새 면모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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