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영국 작가 위다(1839~1908)가 쓴 <플랜더스의 개>는 슬픈 동화다. 벨기에의 작은 마을에서 외할아버지 예한 다스와 살던 소년 넬로, 우유배달을 하는 대형견 파트라슈의 얘기는 언제 읽어도 가슴이 먹먹하다.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난 넬로가 추운 겨울날 파트라슈와 함께 찾은 곳은 안트베르펜 대성당이었다. 대성당에는 두꺼운 커튼 뒤에 루벤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 그리기에 재능을 갖고 있던 넬로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림을 보려면 돈을 내야 했기에 넬로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넬로는 파트라슈를 껴안고 얼어 죽기 전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와 ‘십자가를 세움’을 보게 된다. “루벤스의 그림을 볼 수있으면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할 텐데…”라던 넬로의 꿈이 너무 늦게 이뤄진 것이다.
넬로가 커튼 뒤에 가려졌던 루벤스의 그림을 보길 갈망했던 것처럼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가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숨겨진 재산을 찾기 위해 진행한 모금운동이 ‘플랜다스의 계’다. MB가 실소유주로 의심되는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주식 약 3%를 매입해 주주권을 행사하면서 소유구조의 실체를 밝혀내려는 게 ‘플랜다스의 계’의 목표다. 지난 9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진행자 김어준과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이 다스 주식매입을 위한 모금운동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자 한 청취자가 위다의 동화 <플랜더스의 개>에서 착안해 ‘플랜(Plan) 다스(Das)의 계(契)’를 모금운동의 명칭으로 쓸 것을 제안했다. ‘계처럼 돈을 모아 다스 주식을 매입하려는 계획’이란 뜻이 담긴 모금운동의 방식도 독특했다. 이자율 0%, 대여기간 3년, 최소금액 15만원을 한 단위로 최대 금액 제한이 없는 대여금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모금운동의 열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달 30일 계좌를 개설한 지 22일 만에 목표액 150억원을 채웠다. 시민 3만6477명이 참여했다. 그만큼 다스의 실소유주를 밝히려는 시민들의 열망이 컸던 셈이다. 검찰도 지난 주말 다스의 실소유주 의혹에 대해 별도의 수사팀을 꾸리고 본격 수사에 나섰다. “그런데 다스는 누구 겁니까?” 시민들의 물음에 답을 찾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박구재 논설위원>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유미의 나무야 나무야] 때론, 참나무처럼 (0) | 2017.12.26 |
---|---|
[사설] 소방차 진입 위한 ‘불법주차 금지법’ 시급하다 (0) | 2017.12.26 |
[속담말ㅆ·미]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 (0) | 2017.12.26 |
[NGO 발언대]성평등 개헌이 필요하다 (0) | 2017.12.26 |
[산책자]독자의 ‘장난’을 허하라 (0) | 2017.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