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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인천의 한 소방서에서는 현장 활동 중에 사고를 당할 경우 책임을 물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시달했다가 크게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바로 2년 전 소방방재청에서 추진했던 ‘안전수칙 위반자 벌점제’와 똑같은 모양새다.

그 당시 소방방재청은 소방관들의 순직사고를 예방한다는 취지로 현장 활동 중에 전치 4주 미만의 부상이 발생하면 훈계, 4주 이상 부상이나 사망 사고가 나면 감봉 또는 견책 그리고 세 번 이상 사고가 반복될 경우 파면이나 해임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대표적인 탁상행정으로 소방내부에서마저도 큰 반발을 가져왔던 이 정책은 인터넷에서‘안전수칙 위반자 벌점제’폐지 청원에 수천명의 시민들이 서명으로 참여하면서 결국 시행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다. 현장을 충분히 보듬지 못하는 정책들은 그 생명력이 짧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소방관들이 새로운 정책을 연구하면서 종종 필자에게 미국소방에 관한 자문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받는 질문중 하나는 바로 “미국소방에서는 소방대원이 규정에 따르지 않았을 때 어떤 징계나 조치를 취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면 어떤 정책을 시행하기도 전에 이미 징계부터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국소방에서는 징계와 문책에 관한 규정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소방대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정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너스 또는 휴가와 같은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서 그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가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세상의 계산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소방관의 삶을 살아가다보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재난 속에서 크고 작은 실수들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런 실수들을 극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사람을 살리고 재산을 보호하는 믿음직스러운 소방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건 _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언론과 시민들은 소방의 숭고한 정신을 높이 사서 우리를 영웅이란 이름으로 불러주고 상도 주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에게 비춰진 소방관이란 모습은 어쩌면 그저 연기에 까맣게 그을리고 지쳐서 힘들어하는 안쓰러운 모습만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 전반적으로 소방의 국가직화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드높다. 대학생들부터 시민, 언론 그리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다들 소방의 미래를 염려해 주고 응원하고 있다.

소방 외부에서는 대한민국이 보다 더 안전할 수 있도록 소방을 존중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잘못된 점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징계와 문책이란 달콤함에 현혹되어 잘못을 덮으려고 하기에만 급급하다.

마치 두 개의 상반된 기준을 가진 것처럼, 필요할 때는 소방의 희생정신을 들먹이며 감정에 호소하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할 일이 생기면 공무원이란 획일적인 틀에 가두어 소방관들을 가혹하게 내려치기 바쁘다.

조직사회에서 징계와 문책은 어쩌면 사람을 길들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기본원칙과 상식을 위반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함이 마땅하겠지만, 누구나가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징계와 문책으로 소방관들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두어 조직 스스로가 발전해 나갈 기회마저 빼앗아 가는 것은 대한민국의 안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결국은 우리에게도 독이 된다.

소방관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매일 기도한다. 하늘에서 내려준 숭고한 소명을 수행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소방관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소방관들이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소방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그저 미워하고 비난하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따뜻한 봄에 땅을 갈아엎어야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기회에 우리도 소방 내부의 잘못된 생각이나 습관들을 확 갈아엎어 보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면 좋겠다. 존중의 또 다른 이름은 관심과 배려이지, 징계와 문책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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