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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소방인들이 크고 작은 사건에 휩쓸려 처벌을 받았다. 이런 부적절한 행위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을 희생하고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많은 소방인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과 우리 동료 소방인들의 안전까지도 위협하는 심각한 일탈행위로 볼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면, 1999년 소위 <움직이지 않는 소방차> 사건을 들 수 있다. 전·현직 소방간부들이 뇌물을 받고 부실소방차를 구입한 사건으로 소방차 납품비리로 적발된 12명의 소방관 중에서 소방본부장급이 무려 8명이나 되어 소방 전반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2006년에는 22만대에 달하는 불량소화기 유통사건이 불거졌고, 2007년 경기도의 모 소방서장은 유흥주점에서 모욕적인 성적 발언을 하는 등 추태를 부린 혐의로 직위해제 당하기도 했다. 2010년 부산의 한 소방서장은 준공검사 과정에서 시공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각종 비리를 근절하고 ‘클린소방환경’ 조성을 위한 목적으로 2010년 8월 소방방재청은 전국의 소방본부장을 한자리에 모아 인사, 물품구매, 계약업무 및 민원 부문에 대한 감찰기능을 강화하고, 비리가 적발될 경우에는 관용 없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를 실시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지방의 한 소방본부장은 설날을 앞두고 부하 직원 3명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심지어는 의용소방대원으로부터도 쇠고기를 받은 것이 적발되어 스스로 사임했다. 2014년 9월에는 불량 불꽃감지기 4641개가 대량으로 시중에 유통되는가 하면, 같은 해 10월에는 모 원자력발전소의 한 소방대장이 소방차의 기름을 빼내 자신의 차량에 넣었다가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 건 _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또한 경상북도의 한 119 안전센터에서는 2012년 말부터 2014년 말까지 ‘가짜 실리콘 손가락’을 만들어 부하직원이 대신 지문인식기에 찍어주는 방법으로 야간수당을 타낸 소방관들이 ‘공전자기록위작’이란 혐의로 지능범죄수사대의 조사를 받았다.

2015년 들어서도 일선 소방관서에서 구입한 특수방화복과 피복이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인증을 받지 않은 ‘가짜’로 확인되면서 해당업체는 조사를 받고 있으며, KFI의 다소 의심스러운 인증 체계도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벤츠여검사사건, 자원외교 비리, 각종 방산비리 등으로 대한민국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젠 판단하는 것마저도 무의미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 소위 ‘김영란 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일하는 우리 소방은 건축, 준공검사, 소방검사, 인·허가 업무 및 장비구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스타일의 정과 신뢰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과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 소방은 그 시작점부터 다르다. 따라서 부적절한 청탁을 제안해 오거나 요구하는 사람들은 결코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다. 어쩌면 그들과는 태생부터 악연인 셈이다.

매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표하는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기준을 살펴보면 다양한 부패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금품 및 향응제공, 특정인 또는 특정업체에 대한 특혜, 직위를 이용한 알선 및 압력행사, 부당한 사익 추구, 권한남용, 불투명한 인사, 부당한 업무지시, 위법한 예산집행, 교통 및 숙박시설 제공 등 의심스러운 행사협찬, 담당직원 친인척의 취업알선 및 부동산거래 특혜 등이다.

평상시 자신의 주위를 충분히 살피고 돌아보지 않으면 실수하기 쉬운 부분들이다. 굳이 성선설과 성악설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유혹이 다가오면 의지와 감정의 줄다리기 속에서 성공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소방인들은 매일 아침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나의 책무가 무엇인가?”를 머릿속에 되뇌며 하루를 열어야 하는 것이다.

세월호의 비극을 보면서 망연자실했던 우리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서 모든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안전을 가지고 타협하고 양보하는 순간 소방은 이미 제 역할을 못하고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사사로운 것에 마음을 쏟아 일을 그르치기 보다는 인생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결코 부끄럽지 않은 소방인으로 남아야 한다.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전문가 정신과 안전을 담보로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청렴정신에서 비로소 소방의 힘은 시작된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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