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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자신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어 다른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란 말로 자주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글에서는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지도층이란 말은 다분히 권위적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맞는 적절한 표현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있다. 존경받는 종교인을 비롯해서 국민의 소중한 표가 모여 만들어낸 선출직 공무원, 오지에서 봉사하는 의사,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교수, 사병을 챙기는 군 지휘관, 선한 기업 CEO,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바른 언론인 등 제각각 역할도 다양하다.

대한민국 소방이 정확한 위상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표류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들에 대한 소방교육의 부재라고 나는 믿고 있다.

소화기 사용법과 비상시 대피요령에 대한 교육은 이미 진부하다.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소방교육에서 과감히 탈피해서 다양한 재난현장에서의 소방의 역할, 소방만의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서 소방의 존재가치와 위상에 관한 내용의 커리큘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 소방인들이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에 시민들의 유기적인 협조가 어우러진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그래서 살아 움직이는 파급력 있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소방인들의 땀과 수고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치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소방서를 방문한다. 늘 그렇듯이 줄지어 서있는 소방관들과 악수를 나누고 미리 준비한 방화복을 입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몇 마디의 덕담을 건네고 나면 그것으로 소방서 방문 일정은 마무리된다.

이 건 _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하지만, 그렇게 그들을 떠나보내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사실 이 시간만큼 우리 소방에게 소중한 시간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큰 영향을 끼치는 그들에게 우리 소방을 제대로 알리고 그들의 이해와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리더들이 우리 소방을 깊이 있게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야말로 든든한 후원자를 얻게 되는 셈이다. 대한민국 안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그들과의 지속적이고 진지한 관계 유지가 또 다른 숙제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적으로도 보완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소방교육의 의무화다. 선출직 공무원들은 국민의 투표를 통해서 선출된 사람들로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의원 그리고 특별시장이나 도지사와 같은 광역자치단체장, 군수 또는 구청장과 같은 기초자치단체장 그리고 교육감 등이 있다.

그들로부터 실질적인 지휘 감독을 받는 소방관들은 지휘계통을 중요시하는 공무원이란 신분 때문에 현장의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는 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다. 물론, 제도개선, 공무원 연찬대회, 연구논문 발표 등을 통해서 현재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건강한 의사통로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해마다 수도 없이 바뀌고 급하게 만들어지는 정책에 일일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방법은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우리 소방은 한마디로 전문성이 생명이다. 그런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업무의 연속성이 반드시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여론을 의식한 포퓰리즘의 결과로 만들어진 선심성 정책이나 일회성 이벤트로 소방의 본질이 훼손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목격해 왔다.

아무리 일선에서 다양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의견을 제시한다고 해도 조직의 리더가 이런 전문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처 되어 있지 않다면 소방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참으로 선출직 공무원들은 많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들로써 그들의 의견과 가치관은 곧바로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느니만큼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소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에 이르는 심도 깊은 소방정책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육의 내용도 수박 겉핥기식만으로는 큰 효과가 없으니, 보다 더 현실적이고 심도 깊은 내용의 커리큘럼이 만들어져야 한다.

선출직 공무원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는 국내 및 해외 자원봉사자,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질 예비교사, 예비 법조인, 사관학교 생도, 생명을 공부하는 의학도, 예비 종교인, 예비 기자와 방송인, 국회의원 보좌관 등 다양한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발굴해서 우리 소방의 역할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를 구해야 한다.

개인의 사사로운 청탁이 아닌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한 진심이 전달된다면 선한 영향력을 갈구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들이 결코 우리의 요청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리더는 바로 아이들이다.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어려서부터 우리 소방을 제대로 알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면, 미국 소방서에서는 지역사회의 어린아이들을 위한 ‘생일축하파티’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 아이들에게 소방대원은 바로 영웅이다. 그들의 영웅이 일하는 곳 그리고 멋진 소방차가 있는 소방서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생일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미국 소방서는 문을 활짝 개방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소방서를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으며, 거기서부터 소방교육은 시작된다.

시대는 이미 바뀌었는데 그저 앉아서만 기다리는 것으로는 우리에게 큰 발전은 없다. 이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공격적으로 찾아나서는 새로운 형태의 소방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이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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