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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만은 자취방으로 돌아오다가 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삼십대 초반쯤 되어 보였는데, 검은색 항공 점퍼에 색 바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가르마를 타지 않고 얌전히 아래로 내린 머리카락은 눈썹을 다 가리고 있었고, 입술 바로 위쪽엔 무언가에 베인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전체적으로 마른 체형이었고, 키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얀색 손수건을 손목에 마치 팔찌처럼 묶고 있었다는 점이다. 남자가 담배를 피우거나 휴대폰을 귀에 댈 때 그 손수건이 도드라져 보였다. 

진만은 그 남자 이야기를 정용에게 꺼냈다.

“좀 이상하더라고…. 인상도 안 좋고.”

“뭐 볼일이 있나 보지. 우리 동네에 사람이 좀 많이 사냐?”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용은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말했다. 그 말이 맞긴 했다. 원룸촌이 있고 임대아파트 단지가 있고, 또 걸어서 5분 거리에 커다란 가구공장 단지도 있으니까. 아침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나가 보면 낯선 얼굴들이 마치 주차장에 깔아놓은 조약돌들처럼 다닥다닥 한 곳을 보고 서 있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밤에는 그 많은 사람이 다 외박을 하나 싶게 동네가 조용했다. 진만이 어렸을 땐 무슨 돌림노래처럼 하루 건너 한 번씩 이웃에서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 누군가 서럽게 우는 소리, 또 그 사람들을 말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이젠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싸울 사람이 있어야 싸우지. 정용은 툭 그런 말을 했다. 요샌 부부도 카톡으로 싸운대. 이쪽 방 저쪽 방 각각 떨어져서. 그게 더 깔끔하긴 하지. 

“아니 볼일이 있는 거 같진 않고…. 계속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서 있더라고. 그것도 사흘 연속.”

“별게 다 이상하네. 신경 꺼. 사람들은 네가 더 이상해 보일 거야.”

“내가? 내가 뭐가 어때서?”

“너 맨날 빈 페트병 들고 동사무소 간다며? 거기 정수기 물 받으러.” 

“아니, 그건 그냥 거기가 편의점보다 더 가까우니까….”

“구질구질하게. 거기가 무슨 약수터냐? 동사무소 직원들은 그럼 다람쥐냐?”

진만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음날 진만은 집으로 돌아오다가 다시 그 남자와 마주쳤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날과 사정이 좀 달랐다. 남자는 늘 있던 곳이 아닌, 한 원룸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이층 불 꺼진 유리창을 노려보면서 입 모양만으로, 소리는 전혀 내지 않은 채, 계속 욕을 하고 있었다. “씨발년아!” 그는 분명 그렇게 욕했다. 한 손으로 무언가 집어 던지는 시늉을 하기도 했고, 허공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진만만 남자를 본 것은 아니었다.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보았으나, 남자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남자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이고 가던 길을 갔다.

아이 씨, 어쩌지….

진만은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 처음 남자를 봤다면 아무렇지 않게, 남들처럼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벌써 네 번째였다. 마치 자신이 세상에 딱 한 명 존재하는 목격자처럼 여겨졌다. 진만은 일부러 발길을 돌려 남자의 앞을 다시 한번 지나쳤다. 남자는 여전히 이층 유리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만은 골목길 코너를 돌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지금 어떤 남자가 원룸 건물 앞에서 욕을 하고 있다는 거죠?”

“아니, 소리를 내진 않는데요. 분명히 욕은 맞고요, 발길질도 하고 있어요.”

“발길질이요? 지나가는 사람한테요?”

“아니요. 지나가는 사람은 아니고 이층에 대고요.”

112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니까 욕을 하긴 하는데 소리는 안 나고, 발길질을 하긴 하는데 사람한테 하는 건 아니란 말씀이시죠?”

“네….”

“그럼 뭐가 문제인 거죠?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이 피해 본 게 있으신가요?”

이번엔 진만이 침묵을 지켰다. 달리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저희 관할 경찰에게 순찰을 돌아보라고 연락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통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진만은 순찰차가 올 때까지 남자에게서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남자는 이제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저러다 말겠지. 뭐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까. 진만은 그냥 자취방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었다. 때마침 진만이 있는 골목길로 순찰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됐네. 진만이 혼잣말을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남자가 또다시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남자는 순찰차의 경광등이 보이자마자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던 트럭 아래로 몸을 숨겼다. 진만은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순찰차에 탄 경찰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천천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진만이 순찰차 쪽으로 다가가서 그 사람이 저 밑에, 저 트럭 아래 몸을 숨겼어요, 말을 하면 됐지만, 그러자면 그 남자에게 들킬 것만 같았다. 남들에겐 아무 피해도 입히지 않고 허공에 발길질을 한 남자에게…. 진만은 망설였다. 그리고 그 망설임이 끝나기도 전에 순찰차는 천천히 골목길을 벗어났다. 남자가 트럭 아래에서 기어 나와 툭툭, 아무렇지도 않게 바지를 터는 모습이 보였다.

그다음 날 오후, 진만은 물류창고로 출근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진만이 종종 들르던 편의점 앞이었다. 그 출입문 앞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다.

“에고, 세상에 끔찍해라. 알바생이 뭔 죄가 있다고….”

한 중년 여자가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 시간에 알바한 게 죄지 뭐.”

남자는 짧게 말했다. 진만은 어젯밤 남자를 떠올렸으나 애써 다른 생각을 하려 했다. 이곳은 그 남자가 있던 원룸 건물과 떨어진 곳이니까, 그 남자는 거기에 볼일이 있었으니까.

“손수건으로 그랬다면서요?”

“그걸로 다짜고짜 목을….”

“에고 참….”

두 사람은 까치발을 든 채 계속 편의점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진만도 최대한 까치발을 높이 들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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