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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세상이 어지럽다. 사람들은 이득을 취하기 위해 할 일, 안 할 일을 다 한다. 정치는 혼란스럽고 범죄는 흉포해졌다. 올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 일상화된 성폭력 등 중범죄의 예방 및 해결이다. 문만 열어 놓으면 남의 집에 들어오고, 들어오기만 하면 죽이거나 욕보이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대처방법이 미지근하다. 세금으로 유지되는지를 모르는지 경찰, 검찰, 법원은 잠에서 덜 깬 것 같다. 정치인들도 옆집이 다 탄 뒤에야 무심한 이웃 사람처럼 “불이야!” 외친다. 


나주 성폭행 장소인 영산대교 밑으로 내려가는 경사지. (경향신문DB)


 “죽을죄를 지었으니 죽여주소서”라는 대사를 써준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들에게도 오늘의 사태에 약간의 책임이 있을까? 현실에서는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범인들은 술이나 사회적 불평등을 서둘러 핑계로 삼는다. 법의 심판도 “죽을죄를 지었지만 혹시 모르니 일단 살려 놓고 보자”는 쪽이어서 사형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이유는? 국가 이미지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허망한 말이 들린다. 지나친 걱정일까? 피해자를 대신해서 형벌을 가해야 할 국가가 다른 나라들의 눈치를 보는 바람에 참다못한 가족이 직접 나선다면? 유죄이겠지. 그렇다면 직무 태만을 범한 국가는 죄가 없는 것인가? 사형 미집행이 범죄의 만연을 통해 누구의 아내나 남편이나 아이를 죽음이나 평생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면 누구를 위한 이미지 관리일까? 이미지 관리란 맨 얼굴을 숨기는 화장이 아닌가? 피 흘리는 얼굴을 화장으로 숨길 필요가 있는 것일까?


둘째,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자들의 중심 전략은 정책 대결이 아닌 이미지 정치가 될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마음이 하는 일이고 마음에서는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기 마련이다. 대통령을 뽑는 일도 정책 대결이나 능력 검증보다는 이상화(理想化)에 달려 있다. 좋은 이미지는 이상화와 쉽게 연결된다. 




그러니 내 이미지는 좋게 하고 남의 것은 깎아내려야 한다. 약점을 캐고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집요하게 물고 넘어지고 파급효과 강화에는 기자회견을 쓴다. 장터에서 악수하고 농민들과 사진 찍는다. 모든 것을 최대한 이용한다. 인터넷, 페이스북, 트위터. 신문과 방송은 결정적이다. 기회만 주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개그맨과 웃고 떠들며 인간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남녀 불문하고 화장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복장에도 색의 조화가 주는 심리적 영향을 활용한다. 말소리도 다듬어서 좋은 이미지를 주도록 한다. 음성학을 전공한 이비인후과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이미지를 보수-진보, 확고함-유약함, 따뜻함-냉정함의 축으로 받아들이므로 보수는 진보적임을, 고집이 세면 융통성이 있음을, 냉정한 표정이면 따뜻한 면을 보여주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이미지는 진실이기도, 거짓이기도 하다. 독일 젊은이들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돌아와서 자신들을 굶긴 무능한 아버지를 혐오하던 차에 힘 있는 아버지의 이미지로 위장해 나타난 히틀러를 미친 듯이 반겼다. 그 중 다수는 히틀러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도자 선택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지금 한쪽에서 성폭행을 당해도 정의를 구현할 대책이 마땅치 않고 다른쪽에서는 대권을 얻기 위해 이미지를 포장하느라 여념이 없는 세상이다. 이미지를 내세우는 사람은 대중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쉽게 얻는 것이 중요하지 범죄의 고통에 시달리는 소수의 희생자는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차기 대통령이 되려고 나선 후보자들이 흉포한 범죄의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정책 수립 그리고 실천 능력은 “허(虛)”일까, “실(實)”일까. 이미지를 털어내면 그 뒤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다. 어떤 후보자도 대선 전에는 사형제도에 대한 생각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숨길 것이다. 올해 우리는 정치권이 제공하는 이미지의 잔치를 정말 정신을 차리고 잘 읽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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