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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 |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분석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경쟁해서 올릴 성과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공장에서는 오늘도 직원들이 세계 일류 제품들을 만들려고 땀 흘리고 있다. 오늘 밤에도 세계 유수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을 위해 대한민국 연구원들은 밤새 실험에 매달릴 것이다. 모두 경쟁이다.

고통스럽지만 사람들은 경쟁에 뛰어들고 때론 즐긴다. 남보다 잘할 수 있으면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취를 통한 우월감은 개인이 노력해 이루는 결과물이지 국가가 제공해 줄 순 없다.

경쟁 없는 사회가 진정한 복지사회이자 낙원일까? 경쟁이 없는 사회가 아니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사회가 아마도 우리가 꿈꾸는 복지사회나 낙원에 더 가까울 것이다. 유인원 조상 이래 문명을 세워 지금까지 발전시켜 온 인간에게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세칭 일류 대학에 들어간 학생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부모에게 그 아이는 평생의 자랑거리가 된다. 다른 사람들은 이들을 부러워하면서 질시한다. 대학에 들어가는 일만이 삶에서 부딪치는 경쟁은 아니다. 세상은 경쟁으로 넘쳐난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오늘날 각종 고시나 자격시험 제도로 이어지고, 거기에 뽑히면 장래가 꽤 보장되니 치열한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정당에서 대표나 대선주자를 뽑는 경선, 대통령을 뽑는 대선도 치열한 경쟁의 공간이다.

서울대학교 정문 모습 ㅣ 출처:경향DB

 

세상이 이렇게 경쟁으로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양극화, 서열화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대학들 사이의 경쟁적 구도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싶어 한다. 모난 돌은 쉽게 정을 맞는 분위기에서 최근 서울대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에서 일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정당의 대선 전략 중 하나라는 말이 들린다. 말은 복잡한데 서울대와 전국 국립대학들을 묶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공부를 시키고 연구를 하는 대학의 가치를 밖에서 보고 측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학을 다니던 시절 대의를 위해 소신 있게 학생의 길에서 벗어나신 분들이 다수 포함된 정치인들께서 매일 고리타분하게 공부하고 연구나 하는 교육기관인 대학들의 혁신적 구조조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이 국가의 백년대계임을 절절하게 가슴으로 느끼고 계시기 때문일까?

경쟁을 흑백사고로 보면 이긴 사람과 진 사람만 보인다. 그런데 경쟁의 결과를 제대로 결산하려면 뒤에 선 사람이 경쟁 과정에서 얻고 배운 것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또한 앞에 선 사람이 지고 가는 부담과 스트레스도 고려해야 한다.

경쟁에 지면 내 생각에도, 남의 생각에도 스스로 패배자가 되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자신을 경쟁구도 안에 넣고 남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경쟁이 불필요한 일들도 많다. 화가와 성악가가 노래하는 능력을 놓고 경쟁한다면 웃기는 일이 될 것이다. 변호사와 의사 중 누가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는지를 겨룬다면 말이 안되는 일이다.

대학의 서열화 문제는 통합이 아닌 공정한 경쟁으로 풀어야 한다. 대전의 카이스트, 포항의 포항공대가 이미 서울대 공과대학과 어깨를 겨루게 됐다면 지방대학들의 특성화를 지원할 문제이지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전시연합대학(戰時聯合大學)을 흉내 낼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교육경쟁력의 진짜 문제는 우리 대학들 중에 국제적으로 봐서 정을 맞을 만한 모난 돌이 아직 없다는 현실이다. 서울대조차도 세계 일류로 가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참고로 말하면 대한민국 국회는 서울대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2010년 12월에 법인화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니 그나마 어렵게 국가를 대표하는 고등교육기관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밑에서 흔들 일이 절대 아니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버리면 바늘은 바느질을 제대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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