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도언|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존 볼비의 업적은 ‘애착’에 관한 연구이다. ‘애착’이란 아이가 자기를 돌보고 키워주는 사람과 지속적이고 정서적이며, 행동적인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현상을 말한다.

애착이 잘 형성되게 하기 위해서는 아기가 원할 때 엄마 또는 같은 사람이 늘 곁에 있으면서 적절한 반응을 제때에 보여야 한다. 배가 고프면 먹여주고 아프면 안아주고 달래주어야 한다. 그러면 언제나 도움이 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믿음이 아기에게 생긴다. 그래야 아기가 외부 세계를 탐험할 호기심과 의욕을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애착이론은 지금 발달심리학적 연구뿐 아니라 소아, 청소년, 성인의 정신적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보육 지원 정책의 방향과 내용이 논란이 되었다. 결혼은 안 하려 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면 국가가 사라질 위기가 오지 않는다는 법도 없으니 아이들을 잘 키우도록 국가가 도와야 한다. 거기까지는 옳다.

 

출처:경향DB

집에서 양육하는 아이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지만 보육시설로 옮기면 받을 수 있다고 하자. 전국의 보육시설에는 예약이 넘쳐나겠지만 언뜻 보면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살이 안된 아이들을 집이 아닌 보육시설에서 주로 키우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애착관계가 불안정한 아이들을 많이 키워낼 위험이 크다. 아이와 부모들을 돕고자 하는 목적은 좋으나 너무 일찍 보육시설에 맡겨진 아이가 애착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정서적·행동적 문제가 있는 국민으로 자란다면 부담은 가족과 국가에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애착 형성이 잘된 사람은 마음이 평안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애착 형성이 불안정하게 된 사람은 자주 불안해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이는 적어도 만 세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사람이 맡아 키워야 한다는 체계적 연구의 결과를 정책이 뒤집을 수는 없다. 여기서 ‘같은 사람’이란 엄마, 할머니, 또는 집에 같이 사는 아주머니 등이다. 물론 최상의 선택은 엄마가 직접 키우는 것이지만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 힘들고 복잡해졌다.

세 살 이내의 아이라도 보육시설에 보내면 지원금을 주고 집에 데리고 있으면 주지 않는 경우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익은 애착관계가 견고하게 형성되지 않고 흔들리게 될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들만 지원금 때문에 세 살 이전의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보내야 한다면 이는 사회 정의도 아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녀의 문제로 인해 더 형편이 어려운 부모를 만들어내는, 불공정 행위가 될 것이다.

애착관계가 불안정한 아이는 커가면서 부모에게 늘 매달리고 관심과 사랑을 지나치게 요구한다. 그런 아이들은 흔히 정신적 문제를 보인다. 정서가 불안정하고, 행동이 반항적이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과도하게 예민한 어른들은 어려서 애착 관계의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애착관계가 안정적이 되도록 키운 아이들은 커서 어려운 일들을 겪어도 잘 극복해서 가족이나 국가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자존감이 높고 대인관계가 원만해서 직장에서 잘 지내고 결혼을 잘하고 아이들을 잘 키운다.

양육과 보육 모두 다 적절한 때가 있다. 세 살 이전의 아이는 안정적 애착을 위해 집에서 엄마와 지내고, 더 크면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보육시설에서 낮 시간을 보내야 한다.

건강한 국민이 있어야 건강한 국가가 있다. 그러니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 대한 투자 전략은 현명하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주려면 집에서 키워도 당연히 지원금을 줘야 하고, 부모들도 세 살 이전까지는 힘들어도 아이를 집에서 키워야 한다.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면 국민이 국가에 느끼는 애착관계도 흔들릴 것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