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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5월30일,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의 전당대회가 있었다. 지금은 잊힌 이름이지만 당시에는 총재로 불리던 당의 리더를 뽑는 자리였다.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김영삼(YS)이 이철승을 물리치고 선출됐다. YS의 승리에는 김대중(DJ)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양김 간의 경쟁을 고려할 때 그들의 연대는 의외의 일이었다. 그 담대함이 결국 그해 10월 유신체제의 붕괴를 이끌어낸 셈이다.

1970년 9월에 있었던 당의 대선후보 선출에서 격돌한 이후 YS와 DJ는 필생의 라이벌이자 파트너로 한국 정치를 주도했다. 그들이 손을 잡고, 힘을 합칠 때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에 깊은 균열을 낸 1984년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도 양김이 협력해서 만들었고, 이 민추협이 주축이 돼서 만들어진 신한민주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관제야당체제를 혁파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1987년에 있었던 6월 항쟁도 두 사람이 단일대오를 형성했기에 가능했다.

양김의 갈등과 분열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197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양김은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대립하다 결국 군부에 틈을 열어주고 말았다. 그들이 그때 협력했더라면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7년엔 또 어떤가.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이후 그들은 또다시 분열로 나아갔다. 둘 다 선거에 출마했고, 결과는 노태우의 당선이었다. YS의 28.0%, DJ의 27.0%를 합치면 당선자인 노태우 후보의 36.6%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권력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 권력의지 때문에 누군가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기치를 들고, 세를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이 아니라 피해를 가져다주게 될 때에는 자제돼야 한다.

경쟁 당사자들에겐 이기고 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경쟁을 지켜보는 유권자들로선 승자가 누구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진영의 승리다. 무릇 경쟁의 때와 협력의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정치력이다. 따라서 정치인이라면, 그 중에서도 대선주자라면 마땅히 이 정치력을 가져야 한다.



문재인 대표의 해법은 문·안·박 연대이고, 안철수 의원의 그것은 전당대회를 통해 두 사람 간에 승부를 가리자는 것이다. 따지자면, 문·안·박 연대를 치밀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문 대표의 잘못도 적지 않다. 어쨌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리더십 아니던가. 안철수 의원도 정치력 부재에 대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의 요구는 문 대표 사퇴인데, 그가 직전 대표인 데다 경쟁자인 점을 감안하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자신도 보궐선거 패배에 책임지고 사퇴했다고 말할지 모르나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작은 선거에서의 패배 때문에 물러나는 건 옳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당해 본 입장이니 더 더욱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대로 가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총선에서 크게 패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과 독주도 새정치민주연합이 만만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중론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총선에서 본때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이런 열망으로 인해 대선주자들끼리 반목하고 분열하기보다는 힘을 합치고, 함께 혁신하기를 바란다. 전당대회 해법은 이 열망에 배치된다.

전당대회, 특히 대선주자들이 격돌하는 전당대회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당이 거당적 갈등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게다가 총선 공천을 앞둔 전당대회이니 편 가르기와 사생결단의 난투극은 불가피하다. 전당대회에선 현역 의원을 포함해 지역위원장들의 영향력이 크다. 당권 후보들은 이들에게 손 내밀 수밖에 없다. 이 거래 때문에 물갈이는 불가능해진다. 패자 쪽의 의원이나 지역위원장 중에서 솎아내고자 해도 정치보복으로 비쳐져 쉽지 않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은 서로 해법이 다르고, 양김만큼의 정치력도 없다. 총선 전 분당, 총선 뒤 붕괴를 막으려면 두 사람의 선택만 계속 쳐다봐선 안 된다.

이제는 당의 총의를 모으고, 두 사람이 따르도록 강제해야 한다. 이 역할을 국회의원들에게 맡길 수도 없다. 어떻게 해서든 물갈이되지 않으려는 이해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는 탓이다. 당 소속의 각급 선출직 공직자들, 전·현직 당직자 등이 모이는 ‘당원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서 각종 해법에 대한 끝장 토론 끝에 최종 결론을 내는 게 좋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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