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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대표의 탈당을 계기로 우리 정치를 좀 찬찬히 돌아보면 좋겠다. 지금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라고 하는 문재인 대표, 박원순 시장, 안 전 대표 등은 모두 ‘불려 나온’ 사람들이다. 정치에 뜻을 품고, 정당에서 훈련받고, 선거를 통해 검증받으면서 대선주자의 반열에 오른 분들이 아니다. 시대가 그들을 호명하고 그들이 부응해 나왔지만 다른 한편 진보정당의 약화가 초래한 현상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정치는 매우 후지고 지질한데, 그 원인으로 진보정치의 무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진보정치의 무능은 진보정당의 약화에서 비롯됐다. 흔히 지적하듯, 진보는 정치보다 운동에 더 익숙하다. 그런데 보통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든 나라들을 보면 예외 없이 정치가 동력이다. 결국 진보가 유능한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진보의 정치적 무능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되레 부담이 된다.

보통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를 복지국가라고 한다면, 복지국가는 한두 명의 리더에 의해서가 아니라 좋은 정당에 의해 만들어졌다. 인물보다 정당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들 나라에서도 훌륭한 리더들이 있었으나 이들이 정당 밖에서 길러지고, 정당을 부정하거나 위축시키면서 성장하지는 않았다. 정당이 이런 인물들을 길러냈다. 그리고 그 리더들은 정당을 더 강화시켰다. 정당을 통한 정치기획의 산물이 바로 약자들이 살기 편한 나라, 복지국가다.

안 전 대표의 탈당은 또 과연 누가 정치를 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권력의지를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하는 건 좋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권력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다른 생각을 존중하면서, 정말 싫어서 얼굴을 마주하기조차 싫은 사람과도 머리를 맞대 의논하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결론일지라도 더 큰 대의를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정치다. 차이를 인정하고 타협하는 게 정치의 본질 아니던가. 따라서 정치를 잘하는 것은 뛰어난 스펙이나 선의, 명성 등의 요인과는 전혀 상관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을 선언하기 앞서 기자회견문을 꺼내고 있다._경향DB


“중요한 것은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런 삶의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것을 내적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이다.” 막스 베버의 이 통찰처럼 정치인은 들여다보고, 견뎌내고, 감당할 수 있는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치에서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건 위험하다. 유권자로서 정치인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낡은 정치를 바꾸는 충격은 새로운 사람에 의해 과감한 도전에 의해 주어지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안 전 대표나 문 대표가 비싼 대가를 치르며 단단한 실력을 키워가는 도정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안 전 대표의 탈당으로 인해 문 대표와 안 전 대표 중 누구 책임이 더 큰지를 따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책임 산정이란 게 쉽게 따져질 일도 아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편이 갈리고,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뉘어 ‘네 탓’을 일삼으면 그거야말로 같이 죽는 길이다. 베버가 이런 말도 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아무리 비관적이라고 해도 같이 사는 길을 고민·모색해야 한다. 그게 정치가 가진 힘이다. 지금은 차분한 대응이 최고의 전략이다.

안 전 대표의 탈당 소식을 들으면서 이런 말이 떠올랐다. ‘얻으려면 먼저 주라.’ <노자>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장욕탈지 필고여지(將欲奪之 必固與之), 나중에 얻으려면 먼저 주라는 뜻이다. 안 전 대표는 먼저 주었고, 게다가 줄 만큼 주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맞는 생각이다. 하지만 받는 것도 다 때가 있다. 그때를 잘 분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문 전 대표는 타이밍상 이번에 크게 주는 게 필요했다. 지난 대선 때 양보받은 빚을 이번 국면에서 갚았더라면 싸게 갚는 셈이다. 앞으로 두 사람이 ‘먼저 주는’ 정치를 펼쳐주길 소망한다.

정치는 있는 현실에서 시작되고, 바뀐 현실에서 다시 시작한다. 진보세력은 최악의 분열 앞에서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혼란 속에 새 질서가 탄생하고, 이 혼란은 윤리적 요청이 아니라 정치문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계기를 통해 진보정치가 더 유능해질 수도 있다. 아직, 희망은 있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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