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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이란 개인이 소속된 ‘국가’의 기록이다. 국가라는 공동체는 국적을 가진 구성원을 국민으로 보호하고, 국민은 의무를 부담한다. 개인에게 최초 국적은 어떤 의미에서 고정적이다. 생물학적으로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국적은 변경될 수 있다. 국적은 국가라는 공동체의 운명과 함께하는 것이므로 국가가 없어지면 구성원의 국적도 함께 바뀐다. 8·15 해방 이후 일본에서 연합군총사령부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살고 있던 조선인의 일본 국적을 박탈하고 ‘조선적’이라는 외국인으로 등록하게 했다. 외국인은 보호를 받을 국적국이 있어야 하지만 당시 외교적으로 조선이라는 공동체는 없어졌고 아직 남한과 북한이라는 국가공동체는 생겨나기 전이었다. 따라서 ‘조선적’이라는 국적은 법적으로 유효한 국적일 수 없고, 공동체 구성원이 아닌 배제 집단을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행정적 분류기호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조선적’이란 배제의 낙인은 강력했다. 조선적이라는 이유로 일본 사회에서 제도적이고 집단적인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일상적인 인권침해를 받았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눈물의 시간이었다. 그 역사는 지금도 이어진다.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동포들이 만든 조선학교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피해에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고, 고교무상화 정책에서도 배제되었다. 얼마 전 혐오세력의 우토로 방화사건에서 가해자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와 적대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하나였던 조국은 둘로 나뉘어 남한과 북한이라는 분단국가가 되었다. 전쟁을 지나 서로 극한으로 대립했던 남과 북의 정치세력은 재일조선인을 자신의 역사로 온전히 이해하기보다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했다. 영주권을 준다거나 더 풍족한 삶을 약속하며 국적 선택을 강요했고 많은 사람이 강요된 선택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둘로 나뉜 조국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어떤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보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한쪽의 선택을 거부하고 ‘조선적’이라는 배제된 집단의 삶을 선택했다. 일본 정부가 차별과 배제로 낙인찍은 ‘조선적’은 한반도의 분단과 대립의 시대에 어쩌면 유일한 통일을 꿈꾸던 사람들이었다. 남과 북의 경계에 남은 재일동포들은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군부독재 시절 있었던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이다.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군부독재 시절 발생한 간첩사건 중 3분의 1이 재일동포나 일본 관련 사건이었다. 2015년 오랜 법정 투쟁 끝에 간첩조작 피해자의 혐의가 무죄로 밝혀졌고,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유신독재에 반대하고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해외 동포단체인 한통련 사건도 오랜 재판 끝에 무죄가 선고되지만, 여전히 분단시대의 반국가단체 굴레에 묶여 최근까지 입국이 제한되어 왔다. 차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번주 국내 시민단체들의 초청으로 국가폭력 피해 재일동포 선생님들이 한국에 방문한다. 아직도 제대로 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재일동포의 현실을 전하고 오래간만에 그리운 고향땅을 밟는다. 통일을 바라며 살았던 재일조선인의 삶이 재조명되길 바라본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연재 | 시선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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